■ 손신영 동국대 강사 ‘이천 영월암 세미나’ 발표

향교 누각을 옮겨 지은 이천 영월암 대웅전. 불교신문 자료사진

유교건물 부재 사찰에 이용 한국건축에서 드문 사례

길상기 옹 이전 상황 ‘증언’ 유교.불교 우호적 관계

“이천 영월암 대웅전이 향교의 누각 건물 재목을 옮겨 지었다는 점에서 건축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천 영월암과 전통 문화 공간의 활용 방안’이란 주제로 오는 20일 열리는 세미나에서 손신영 동국대 강사가 발표하는 논문 내용이다. 이번 세미나는 이천 영월암(주지 보문스님)과 이천시(시장 조병돈)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가 주관한다.

손신영 강사는 “조선 왕조가 망하고 근대사회로 진입한 시점이기는 하지만 유교의 건물 부재를 재활용해 불교건물을 지었다는 점은 한국 건축 역사상 드문 사례”라고 강조했다. 손 강사는 “사찰을 서원으로 전용하거나 사찰 재목을 서원이나 향교에 사용한 사례는 널리 알려졌지만 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는 영월암 대웅전과 같은 사례는 아직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손신영 동국대 강사는 ‘경기도 이천 영월암 대웅전과 가람정비’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영월암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요소로 대웅전을 빼놓을 수 없다”면서 “이천 관아 누각 이전설과 이천향교 명륜당 이전설이 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신영 강사는 이천에 6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길상기 옹(1933년생)의 구술에 근거해 이천향교 명륜당 이전설이 맞다고 주장했다. 길상기 옹은 “이천향교 누각 재목을 우마차에 실어 영월암으로 옮기던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손신영 강사는 “당시 일을 기록한 문건이 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를 기억하는 길상기 옹의 증언은 이번 조사연구의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손신영 강사는 이천 지역의 유림과 불교계가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이천 향교에 전하는 여러 기문을 살펴보면 향교 창건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향교 건축에 스님들을 비롯한 불교 신도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손 강사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향교의 무너진 누의 재목을 영월암으로 옮긴다 해도 지역정서상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 추정했다.

이밖에도 이번 세미나에서는 △영월암의 역사와 인물(고영섭 동국대 교수 발표, 황인규 동국대 교수 토론) △영월암의 마애불상과 불교미술(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 발표,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 토론) △영월암 소장 법화경과 변상도(김현정 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발표, 김정희 원광대 교수 토론) △이천 문화크러스트 조성과 관광 방향 모색(김유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팀장 발표, 이병두 문광부 종무관ㆍ이인수 월전미술관 사무국장.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 토론)에 대해 조명한다.

이천 영월암 주지 보문스님은 “지역 대표사찰인 영월암의 역사와 인물에 대한 재조명과 더불어 영월암 불사의 복원 방향과 과제에 대해 전반적인 로드맵을 그려보고자 한다”면서 “영월암과 연계된 이천지역 문화크러스트 조성과 이천 문화 탐방지로의 연계 등을 살펴보기 위해 세미나를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천 설봉산 자락에 위치한 영월암(映月庵)은 이천의 대표적인 천년고찰이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 사명(寺名)은 북악사(北岳寺)로 알려져 있다. 조선 영조 50년(1774년) 영월대사(映月大師)가 중창하면서 영월암으로 불리게 됐다. 고려 초기 조성된 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과 나옹대사가 심었다는 수령 640년의 은행나무 한그루가 도량을 외호하고 있다.

[불교신문2928호/2013년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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