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불기 2560 (2016).12.7 수

사이드바 열기
상단여백
HOME 학술&문화재 문화재
미탄사지 서라벌 전성기 ‘증언’불교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로 밝혀져
   
미탄사지 시굴조사 결과 발견된 대형 건물지. 금당으로 추정된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각림스님)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경주 미탄사지가 신라 서라벌의 전성기 당시 도시 환경을 증언해 주는 귀중한 가치가 있음이 확인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일 경주 미탄사지 현장에서 유적 시굴조사 현장보고회를 개최하고 “지난 5월1일부터 진행한 조사에서 대형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를 확인하고 토제 나한상이 출토되는 등 <삼국유사>에 이름만 등장하는 미탄사지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시굴조사 결과 금당(金堂)으로 추정되는 정면 8칸(적심 간격 5m, 퇴칸 3.5m)×측면 4칸(적심 간격 3m), 건물의 길이가 약 37m에 이르는 대형 건물지가 발견돼 미탄사지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적심은 직경 1.5m 규모이며, 기단이 3면에서 확인된다”면서 “2차례 이상 중건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한 사찰 동남편 건물지에서 출토된 토제나한상도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비록 하반신이 결실됐지만 왼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쪽 손을 뒷머리에 댄 채 탄식하며 절망하는 표정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같은 나한상은 일본 호류지(法隆寺) 5층 목탑 1층 내부의 열반석가상 앞에서 통곡하는 제자상과 매우 유사한 표정을 짓고 있어 주목된다”고 했다.

이밖에도 인화문토기, 납석제 호편과 뚜껑, 귀면와, 기린문전(麒麟文塼), 다양한 문양의 와당류, ‘의봉4년개토(儀鳳 四年 皆土, 679년)’, ‘습(習)’, ‘대토(大土)’, ‘정(井)’자 명문와 등이 시굴조사 결과 출토됐다. 

   
미탄사지 출토 토제 나한상.

한편 이번 조사 결과 미탄사지 주변으로 우물과 문지 등 왕경(王京)의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신라 왕경(조방제)속에서 사지 형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역 주변의 조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사단은 내년부터 정밀 발굴을 진행하고 복원 정비까지 추진할 예정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삼국유사>에서 신라 천년 고도(古都) 서라벌을 표현한 ‘사사성장 탑탑안행(寺寺星張 塔塔雁行, 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탑은 기러기가 줄지어 서 있는 듯하다)’을 실감케 하는 등 신라 왕경 복원과 활용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각림스님)가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의 지원을 받아 전국 폐사지 가운데 보존관리 및 활용가치가 큰 절터를 대상으로 학술조사 및 정비사업의 일환이다. 이 사업은 올해부터 1차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불교신문2928호/2013년7월13일자]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3
전체보기
  • 장경일 2013-07-23 23:30:29

    (3)여기 나온 토제나한상은 오른쪽 손을 뒷머리에 대고 탄식하는 표정도 놀라운 것이지만 특수유약을 사용한 짙은 옹기식 도자기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유물이 출토됨으로서 儀鳳 四年 皆土, (679년)당시부터 이런류의 옹기식유약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됐다. 기린문전(麒麟文塼)이 나온 것도 큰 수확이다. 이번 발굴은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삭제

    • 장경일 2013-07-23 23:17:25

      (2) 문화재청에는 전국의 폐사지 명단이 확보돼 있다. 전부다 발굴하지는 못하더라도 주요 폐사지만이라도 발굴한다면 이는 각림스님과 변영섭문화재청장의 역사에 빛나는 공로가 될 것이다. 부디 이사업을 끈질기게 추진하여 불교계의 한으로 남아있는 폐사지 발굴을 이참에 기어이 성취하시기를.......   삭제

      • 장경일 2013-07-23 23:12:33

        (1)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의 지원을 받아 전국 폐사지 가운데 보존관리 및 활용가치가 큰 절터를 대상으로 학술조사 및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이같은 절터를 발굴했다니 기쁘고 대견스런 일이다. 儀鳳 四年 皆土, (679년)명문이 나온 것은 대단한 발굴성과이다.전국의 절터가 대부분 훼손되었지만 이제라도 주요절터를 이런 식으로 발굴해보았으면......   삭제

        포토뉴스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SNS에서도 불교신문
        뉴스를 받아보세요"

        kakaostory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