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옷자락을 펄럭이다

깨달음이 있는 산사

월서스님 지음아침단청

전국 유명사찰 주련 소개

佛法 마음에 새길 수 있어

“맑은 샘물에 바루를 씻으니 국화꽃 흘러가고, 돌 위에 시를 쓰니 구름이 덮여오네. 반 이랑의 흰 구름 갈아도 끝이 없고 연못 속의 달 그림자 흔적이 없다.”

표충사 죽림정사 기둥에 적혀 있는 주련(柱聯) 글귀다. 전국 유명 사찰의 주련을 소개한 월서스님의 <깨달음이 있는 산사>를 펼치자마자 그 아름답고도 깊은 울림이 있는 글들에 매료되고 말았다. 분명 시의 형태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세계는 가히 넓고도 커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가히 온 우주와 삼라만상을 담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야산 해인사, 영축산 통도사, 두륜산 대흥사, 백암산 백양사, 조계산 송광사, 오대산 월정사 등등, 사찰의 주련들이 저마다 오색찬란한 무지개처럼 빛을 내며 나에게 지혜의 언어들을 건네고 있었다.

불가에서 주련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큰스님의 할(喝)이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나태함에 벼락을 내리친다면, 절집의 지붕을 이고 홀로 서 있는 기둥에 새겨져 있는 주련의 글귀들은 무심한 듯 슬쩍 깨달음의 옷자락을 펄럭여 보여준다. 이 책을 읽노라면 자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랬구나, 꽃 피고 새 울고 물이 흐르는 산사에는 사시사철 깨달음의 시가 흐르고 있었구나!’

<깨달음이 있는 산사>는 주련 이야기를 기본으로, 불가의 수행담과 부처님 말씀을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다. 월서스님께 듣는 사설과 승가의 모습, 그리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아름다운 사찰의 사계를 담은 풍경 사진들은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을 고요하고 청정하게 가라앉혀 준다.

주련의 내용들은 너무 심오해 속인의 눈으로 감히 헤아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단순한 불교 경전의 글귀가 아니라 선문법어의 깊은 뜻과 오묘한 진리가 특유의 운율에 담긴 글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 모든 진리는 결국 내가 깊어진 만큼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큰스님들의 말씀을 경전이나 설법이 아닌 주련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주련이 이렇게 주목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동안 사찰의 관리가 허술해 많은 주련 작품들이 훼손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나. 다행히 요즘 절에서는 주련의 가치를 매우 귀히 여겨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일독 후에도 가까이 두고, 늘 펼쳐 보고 싶다. 30편의 주련 중 마음이 가는 부분을 읽은 후, 그저 눈을 감고 차의 잔향을 탐색하듯 글귀들을 천천히 음미해본다. 진흙탕처럼 혼미한 마음이 가라앉으면 어떤 지혜의 속삭임이 나를 찾아올 것을 믿으며, 이것이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이다. 역시 책은 그렇게 우리에게 주련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불교신문2928호/2013년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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