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출가학교 참가자 스님 모습 보고 출가 발심

출가하겠다고 서원한 정민혁 행자

올해 스물여덟의 정민혁 행자는 외무고시 준비생이다. 그는 출가학교에 참가하게 된 계기를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불교를 좋아해서 둘째는 주변에 끄달리고 싶지 않아서 셋째는 가정문제를 풀어가고 싶어서다. 고시공부는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지만, 부처님 말씀을 책으로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또 공부하면서 친구나 이성관계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가족과 갈등도 큰 이유였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갑자기 새 어머니와 동생들이 생겼어요. 1~2년을 함께 살았는데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이어지는 것을 겪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집은 불편하고 어색한 곳이 돼 버렸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출가학교에 온 그는 스스로 큰 변화를 겪었다고 했다.

"20대 때 방황을 많이 했어요. 술 마시고 연애하고 일탈하면서 문득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나 하는 고민이 크게 다가왔어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다 여행길에 나선 그는 하늘민자에 빛날혁자를 쓰는 자신의 이름처럼 하늘을 빛내는, 사람을 빛내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외교관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속에서는 '이 길이 내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돈과 명예를 쫓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답답했다고 한다.

"미황사에서 스님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스님들이 다른 사람 고민 들어주고 어루만져주고 웃게 해주는 모습이 멋지게 보였어요.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 위대했어요. 심지어 지금까지 제가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사랑보다도요. 스님들이 다른사람을 위해 사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요가를 하거나 예불을 하거나 상담을 하고, 강연을 듣다가도 마음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다. 출가와 관련한 동영상을 보면서도 눈물이 났다. 그래서 삭발도 했다. 멋있고 위대한 스님들을 따라서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그 때 도반들이 박수를 쳐주고 합장으로 인사해줬다.

"출가를 하면 다른 것은 부차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내 목숨 바쳐서 할 것이란 생각도 있고 가족들 반대도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밖에서 생활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불문에 귀의하겠습니다."

출가의 뜻을 굳힌 그는 여타의 스님들처럼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조만간 수계교육 때 볼 수 있는거냐는 질문에 밝은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명사십릿길을 걷고 있는 행자들

청년출가학교 회향식 현장
"꼭꼭 감춰둔 마음속 고통, 스님과 상담하며 눈녹듯 녹아"

조계종 교육원이 절망과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청년들에게 희망과 대안을 찾아갈 힘을 마련해주기 위해 해남 미황사에서 개최한 청년출가학교가 8박9일간의 일정을 끝내고 지난 8일 회향했다. 43명의 청년들은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이번 청년불교학교에는 다양한 청춘들이 참가했다. 대학생, 대학원생은 물론 구직활동 중이거나 화가, 사회복지사, 바리스타, 증권회사 종사자, 수화통역센터 근무자, 제대를 앞둔 군종병 등이다. 불자가 32명, 나머지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참가 사연도 가지가지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으로 참가했거나,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등 실존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온 참가자들도 있다. 또 출가하려고 하는데 자기의 생각이 바른지 알고 싶어 왔다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43명의 행자들은 미황사에서 지내며 지도법사 법인스님(교육원 교육부장, 출가학교 교장) 금강스님(미황사 주지) 가섭스님(교육원 교육국장) 원영스님(조계종 교수아사리)과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응어리를 풀었다. 또 도법스님과 조성택 고려대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강신주 박사 등으로부터 불교와 인문학강의를 들으며 나의 고통이 나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직결돼 있음을 알아차리며 주변을 돌아보는 눈을 키웠다.

이들이 미황사에서 내려놓은 고민은 가정사나 이성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언젠가 지나갈 고통일 수도 있겠지만, 회향에 앞서 나눔마당에서 출가학교 행자들이 풀어놓은 고민과 고통은 밝게 빛나기에도 부족한 20대의 삶을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소감을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는 여행자의 모습.

가정사, 이성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말 못할 고민 않고 산사로 온 청년들
치유 받고 희망 안고 세상으로 돌아가

우울증 때문에 치료받는 걸 숨기고 출가학교에 참가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행자.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다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행자. 오기전에 엄마한테 살기 너무 힘드니 같이 죽자는 못할 소리를 하고 온게 가슴아프다는 행자. 어머니 자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찾아가는 것조차 꺼렸다는 행자.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어 죽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 전했다는 행자. 위빠사나에 빠져 있는 부모님이 항상 자신에게 알아차림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식의 마음이 어떤지는 알아차리지 못해 답답하다는 행자까지...

저마다 가슴에 꼭꼭 묻어뒀던 상처를 하나씩 꺼내어 도반들에게 내놓았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지만, 이들의 고통은 청춘이란 터널을 지나기에는 너무 무겁고 힘겨워 보였다. 어설픈 위로의 말이 오히려 궁색해지는 시간, 모두가 숙연한 표정이다. 그러나 터져나오는 울음을 어쩌지 못해 숨을 고르다가도, 다시 용기를 내어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행자들의 모습에 누군가는 용기의 박수를 보냈고, 누구는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다. 행자들은 말했다. 그동안 자기 고민에 빠져 다른 사람이 이렇게 아픈 줄 몰랐다고.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8박9일 동안 부딪히고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속내를 꺼내놓기에는 쉽지 않았다. 자신의 삶이 아침드라마처럼 곡절이 있어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 한 행자의 말처럼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표현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십수년을 꼭꼭 숨겨놨던 마음을 세상에 펼쳐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지도법사 스님과의 상담이 큰 역할을 했다. 다수가 불교를 믿고 신행활동도 했지만 스님과 만나서 얘기하고 가까이 부딪힌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가섭스님은 "근엄하고 어려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난 스님들은 지극히 세속적인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는 행자들이 많았다"며 "이 시대 청년들에게 불교사상과 교리, 수행과 문화를 나눠주는 것도 불교가 사회적 실천을 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의를 듣고 있다.

지난해부터 출가학교 지도법사로 동참해온 원영스님은 출가학교 기간 동안 23명의 행자들을 상담했다. 편지 상담까지 진행한 원영스님은 "그간 말할 상대가 없어서 속으로만 끙끙 앓고 살던 행자들이 스님에게 삶의 문제를 털어놓고 난뒤 가슴 속에 돌처럼 켜켜이 쌓인 뭔가가 내려갔다고 말하며 안색이 밝아진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제 행자들은 세상속으로 돌아가 각자의 역할을 찾아야 할 순간을 맞았다. 하산을 앞둔 청년들의 얼굴은 입재식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던 도반들과도 십년지기 친구처럼 친근해 보인다. 그 사이 3명의 남행자는 삭발을 했고, 출가자가 돼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행자들은 돌아가면 어머니를 꼭 안고 살아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고, 누구는 엄마와 삼겹살에 소주를 나누 싶다는 심경의 변화를 밝혔다. 빨리 밖으로 나가 달라진 내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행자도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행자도 있었다. 출가학교에서는 행복했지만 사회로 돌아가서 똑같이 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금강스님은 "출가학교에서 좋은 강의를 들었다고 해서 자신이 가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유용한 얘길 들었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행을 당부했다.

청년출가학교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출가자의 길을 걷길 바라는 마음에서 도입됐지만, 2회째를 맞는 지금 불교가 이 시대 청춘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주는 프로그램이 됐다. 단순히 스님의 삶을 체험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와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안목을 길러주는 게 오늘날 한국불교의 역할인 것이다.

법인스님은 "출가학교에 온 행자들이 모두 현대생활에서 빚어진 모순의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초중고 시절에는 입시에 짓눌리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취업에 쫓기는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워한다. 이런 고민이 많다보니 인간관계도 어긋나 친구와 우정,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스님은 "출가학교는 스님을 만드는게 목표가 아니라 청년들의 아픔에 불교가 응답해주는 것이 핵심"이라며 "중생제도가 거창한게 아니라 고민을 들어주고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공간만 제공해도 충분하다는 걸 출가학교를 통해 느꼈다"고 밝혔다.

저녁예불 전 경행하는 행자들.
수료증을 받고 좋아하는 행자들.
회향식.

 [불교신문2929호/2013년7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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