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지리산 금수암 대안스님

 

사찰음식전문가 대안스님은 사찰음식 강의와 방송스케줄로 날마다 바쁜 나날을 보낸다. 지난 2010년 7월 KBS교양프로그램 ‘비타민’ 녹화를 마치고 출연진들이 함께 모여 대안스님의 음식을 맛보고 있다.

 은사 스님 국일암 원주시절

김칫독 관리 제대로 못해

계곡에 떠내려가면 대중공사

가난해도 행복했던 옛날…

 

1980년 진주 월명사 불사

쥐새끼들과 ‘동고동락’

대안스님 삼시공양과 새참

도량불사 인부들에게 ‘인기’

 

종단 사찰음식전문점 총책임

‘한국불교’ 맛본 전세계 명망가

“최고의 음식” 극찬…“자부심 커”

사찰음식의 대가로 손꼽히는 대안스님의 손맛을 최초로 맛본 이들은 1980년대 진주 월명암 도량불사에 합류한 20여명의 인부들이다. 갓 계를 받은 앳된 행자 신분의 대안스님은 은사 스님의 ‘명’을 받아 월명암 불사에 뛰어들었다. 아침 짓기 무섭게 새참 만들고, 점심 하고 돌아서면 또 새참, 잠깐 한숨 돌리면 저녁공양…. 스님은 숙소에 돌아가는 인부들 손에도 밤참을 들려보내곤 했다. 식재료야 별것 아니다. 산천을 누비면서 주워온 도토리에 온갖 나물이 전부였다. 다만 들기름에 달달 볶거나 살짝 덖어낸 스님만의 음식노하우는 물리지도 않으면서 일꾼들의 구미를 사로잡았다. 특식으로 장아찌김밥, 볶음라면을 내놓는 날 인부들은, 맛의 감동에 ‘쓰러졌다’는 후문. 이따금씩 절밖에 나갈 채비라도 하면 곳곳서 터져나오는 고함소리. “스님 어데 가는교? 우리들 밥은예?”

그 시절 월명암엔 5명의 비구니 스님이 함께 지냈다. 대안스님의 은사 스님과 노스님, 대안스님까지 행자 셋. 불사에 기도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빴던 행자들은, 밤이면 천장에서 쥐새끼가 뚝뚝 떨어지고 심술궂은 가재들이 틀어막은 물호수를 톱으로 뚫고 메우면서 어렵사리 살아갔다. 깨달음에 대한 발심으로 견뎠던 그 시절이 그래도 행복했다고 대안스님은 회고했다. 저녁이면 행자 셋이 둘러앉아 어른 스님의 주옥같은 법문을 청해 들었고, 자성화두를 끌어안은 채 온몸을 다바쳐 1000일기도에 정진했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고 했다. 

지난해 6월 뉴욕에서 열린 ‘사찰음식 뉴욕시연회’에서 한국의 사찰음식을 선보이고 있는 대안스님.

대안스님이 손맛을 발휘할 수 있었던 또한차례 기회는 봉녕사승가대 학인시절에 찾아왔다. 학장 묘엄스님이 먼 길을 나설 때 큰스님을 시봉하는 ‘원행(遠行)시자’를 맡았다. 바깥음식에 예민했던 묘엄스님은 대안스님의 음식이 입에 맞아 그 당시 어딜 가든 스님을 데리고 다녔다. 다니던 중에 절에라도 가면 대안스님은 즉시 후원으로 달려가 직접 음식을 만들고, 저녁도시락까지 싸곤 했다. 원행시자로 살았던 대안스님을 통해 들은 ‘극비’ 중 하나는 묘엄스님이 군것질을 좋아한다는 사실. 찐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 밤을 즐겨드셨고 신도들이 선물해준 귀한 전병도 오가는 차안에서 조금씩 아껴 드셨다는….

강원을 졸업하고 선방정진에 몰입했던 대안스님은 울진 불영사에서 첫 안거를 보내고 3년여간 선방을 다니다 조계종 행자교육 습의사를 지냈다. 학인시절 묘엄스님으로부터 경전논강 실력을 인정받았던 대안스님은 졸업 후 “니는 봉녕사에 들어와 강(講)을 해야 한다”는 큰스님의 ‘강력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끝내 ‘책을 걸지’ 않았다. 대안스님은 이후 걸망을 짊어지고 지리산에 입산, 기도정진에만 몰입했다. 심신이 맑아지면서 스님의 귓가에 들렸던 ‘비보’는 다름아닌 암 선고. 스님은 몸에 침투한 암세포와 맞서 싸웠다. 약을 볼 줄 알아야 치유법을 알 것 같아 그 어렵다는 한의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다. 중국 연변대학까지 가서 중의학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도 취득했다.

손맛 좋기로 유명한 대안스님은 그 즈음 음식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다. 적정한 몸온도를 맞추기 위한 제철음식에다 음식 자체의 영양을 최대한 살려냈다. 법문을 하거나 경전을 강독할 때도 음식이야기를 뒤섞어 흥미진진한 생활법문으로 되살렸다. ‘사찰음식’을 방편 삼아 대중과 만나면서 스님은 음식과 수행을 맛있게 버무렸다. 전국의 어른 스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레시피 만들기에도 적극 나섰다. 남의 책에 나온 레시피를 답습하진 않았다. 작물의 근성을 파악하고 연구해서 대안스님만의 독특한 음식을 하나씩 하나씩 세상에 내놓았다.

2004년 <마음의 살까지 빼주는 사찰음식 다이어트>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요리계는 들썩였다. 종교를 떠나 세상사람들이 사찰음식을 다시보는 계기가 됐다. 수많은 음식레시피가 실렸지만 핵심은 조리법이다. “한국음식은 ‘덖음의 문화’라고 해요. 행자 때부터 우리 스님과 노스님을 통해 배웠던 노하우죠. 냄비에 소금 참기름 두르고 바글바글 끓으면 콩나물 넣고 뚜껑 덮고 잠시 두었다가 냄비에서 새어나오는 김을 한소쿰 잡아 향을 맡으시고 나서 ‘야야 되았다. 깨뿌려서 내와라’하시면 끝이에요. 맛이야 기가 막히지요. 하하.”

대안스님의 수행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은사 스님은 1970년대 해인사 국일암에서 40여명의 대중 스님들을 외호하면서 10년간 원주를 도맡았던 법경스님이다. 그 당시 선방은 탁발로 운영됐다고 한다. 비구니 선방 스님들이 합천을 넘어 거창 진해까지 돌며 탁발행을 한 뒤 해인사 아랫동네 가야에서 소달구지를 ‘렌트’해서 탁발음식을 실어오르곤 했다. 자갈밭에 험난한 산길을 오르다보면 달구지 바퀴가 빠져 애먹기 일쑤였고 애써 모은 탁발음식이 쏟아져 낭패를 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재밌는 건 그 시절엔 선방 수좌들 입맛이 워낙 까다로워 ‘1인 1김칫독’이 불가피했다고 한다. 물김치가 좋니 백김치가 필요하니 고춧가루를 덜 넣었니 많이 넣었니 하는 통에 법경스님이 고안해낸 ‘제도’다. 이 제도 때문에 여름철엔 개울물에 담가놓은 수십개의 장독을 관리하는 소임자가 있어야 했고, 자칫 장독이 떠내려가기라고 하면 대중공사가 열려 가차없이 ‘응징’에 처했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손맛은 물론 손재주가 좋아서 바느질에 능했던 법경스님은 큰절(해인사) 비구 스님들 옷시중까지 들었다고 한다. 광목을 필로 쌓아놓고 물들여 풀매기고 바느질까지…. 오죽 힘들었으면 자기밑에 출가하러 온 대안스님에게 했던 첫 번째 지침이 눈물겹다. “니 바느질 할 줄 아노? 절대 배우지 마라…. 기술을 익히면 공부를 못한다 아이가!”

은사 스님의 ‘뼈저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대안스님은 한국불교 사찰음식계의 ‘최고기술자’가 돼버렸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최초로 세운 사찰음식전문점 ‘바루’의 총책임자다. 그동안 종단이 음식장사하냐는 둥, 독불장군으로 종단 음식점을 꿰차고 들어앉았다는 둥 여기저기서 시샘섞인 말들도 많았다. 대안스님은 그러나 묵묵히 팔을 걷어부치고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 ‘한국불교를 맛보는 이들’에게 큰 만족을 심어줬다.

2011년 12월 세계적인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가 생애 처음 한국에 와서 대안스님의 음식을 맛본 뒤 “내 인생 최고의 음식”이라고 극찬한 뒤, 스님과 기어는 친구가 됐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중요한 조찬회의가 있을 때마다 ‘바루’에서 수많은 귀빈들과 만나 기분좋은 아침을 연다고 한다. “봉녕사 묘엄스님은 군것질을 즐기셨다”는 대안스님의 귀띔에 문득 총무원장 스님이 선호하는 메뉴도 궁금해졌다. 대안스님 왈, “비빔국수 비빔냉면…원장 스님은 면요리를 정말정말 좋아하셔요.”


대안스님이 말하는 ‘여름건강 레시피’

에어컨 냉커피 수박…

“들깨로 몸 온기 되찾길” 

사진 위부터 대안스님이 건강식으로 추천하는 ‘산삼과 마구이’, ‘두릅 밀전병’, ‘삼색전’, ‘계정혜 삼합’.

“몸 건강의 척도는 몸의 온도에 달려있다.” 대안스님도 한때는 모진 병마와 싸웠던 경험이 많다. 건강에 있어 대안스님이 자신하는 충분조건은 몸의 온도다. 비교적 냉한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 유별나게 찬음식을 즐긴다면 중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체질을 알고나서, 자기몸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철에 대안스님이 ‘강추’하는 식재료는 들깨다. 에어컨 문화에 길들여진데다 수박과 참외 등 찬 과일을 즐겨먹고 냉한 음식을 찾게 되는 여름엔 들깨가 몸에 온기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안스님은 “들깨 칼국수도 좋고 찜이나 탕도 좋지만, 그도 어렵다면 들깨차라도 끓여 마시면 여름철 건강에 좋은 보약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장맛철에 더욱 입맛을 당기는 부침개도 건강은 물론 맛과 멋을 두루두루 선보이는 삼색전을 추천했다. 우엉 녹두 등 각기 다른 재료를 넣는 삼색전은 때에 따라 버섯과 호박, 연근, 서리태, 매생이, 흑임자 등을 넣어 색다른 맛을 낼 수 있다. 삼색전을 부칠 때는 들기름과 식용유를 2:1의 비율로 섞어 만든 부침용 기름을 두르면 더욱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대안스님표 매콤한 절집만두와 두부에 장아찌를 올린 두부숙회와 쌈밥을 고추 간장소스와 곁들인 ‘계정혜 삼합’도 군침을 돌게 한다.

시도하지 않으면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찰음식에 관해 대안스님은 “사찰음식 만들기는 정말 간단하다”며 “간단해야만 사찰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절집에서는 자연의 순리에 맞춰 밥상을 차립니다. 자연의 기운을 듬뿍 담고 있는 제철 재료를 이용해서 특별한 첨가물 없이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으면 됩니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음식, 느림과 여유로 차리는 밥상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평온을 가져와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당연한 이치죠. 잘 먹는 것도 일상생활에서 행할 수 있는 수행의 하나인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불교신문2928호/2013년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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