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호승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정호승 시인은 한 편의 시에서 “늙어간다고 사랑을 잃겠느냐 / 늙어간다고 사랑도 늙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사랑이라는 연료는 물자와는 달라서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오지를 향해 여행을 떠나라고 권고합니다. 타인을 ‘오지’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그가 설산(雪山)처럼 높고 빛나고 외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은 설산이며 오지인 타인을 향해 사랑을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라고 권유합니다. 물론 그 사랑을 찾아 떠나는 길은 가혹한 고행의 길입니다. 독수리들이 우리의 심장을 쪼아 먹고, 우리는 먼지처럼 창공에 흩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인은 고통 받는 타인에게 가서 위로가 되라고 말합니다.

[불교신문2926호/2013년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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