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끝〉 회향(廻向)

자신이 닦은 선근공덕 이웃에 전하고

바라는 마음 돌려 수행으로 내용전환

모든 인연은 모였다가 흩어지기 마련이다. 인연의 모임은 흩어짐으로 끝이 있고 그 끝은 또 다른 인연을 잉태하는 힘을 갖는다. 불교에서 끝은 영원한 끝이 아닌 새로운 인연을 불러오는 씨앗이 되어 우리들의 생각과 생명을 움트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인연의 마무리는 아름답고 좋아야한다. 그것을 선근공덕 회향이라 한다.

우리들이 살면서 쉽게 범하는 것이 좋은 인연을 맺고도 끝이 좋지 않아 모든 것을 망치는 경우다. 이는 그간 쌓아온 모든 공덕을 잃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까지 잃게 된다. 또한 그런 경험은 또 다른 인연을 이어가는데 나쁜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의 삶에서 좋은 회향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굳은 다짐의 입재보다 중요한 것이 아름다운 회향이라 할 수 있다. 옛 성현들이 좋은 회향을 간곡히 당부한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다.

회향은 회전취향(廻轉趣向)이란 뜻인데, 자신이 닦은 선근공덕을 나와 이웃에게 전하여 함께 하는 것으로 방향전환의 회향과 내용전환의 회향으로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방향전환의 회향은 나에게 향하던 공덕의 에너지를 타인을 위해 쓰는 사회적 실천을 말한다. 이는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던 삶의 방식을 벗어나 나와 이웃의 관계를 이해하고 인연공동체라는 인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각자의 존재가 모여 공존의 유기체적 관계가 돼야 함께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행동과 생각이 서로 다르지만, 인연공동체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포함한 보혁갈등과 양극화 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회향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관계 속에서 구성원의 일원으로 나의 이기적인 행동이 타인에게 고통이 될 수 있고 내 입장만을 주장하는 것은 끝나지 않는 사회적 갈등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우리사회의 갑을논쟁이 그렇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그렇다. 나의 주장과 배치되면 시쳇말로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행위에서 상생과 공존의 미덕은 찾기 어렵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포용의 마음이 우리에게 너무 절실하다. 이것이 바로 방향전환의 회향이다.

둘째는 내용전환 회향으로 바라고 구하는 욕망의 마음을 돌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는 수행을 말한다. 이것을 완전한 기도회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은 기도와 정진을 통해 현실적인 좋은 과보를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감인세계(堪忍世界)에 사는 우리들의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고해(苦海)라는 말처럼 우리들은 생멸의 끝없는 반복으로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의 삶을 살아간다. 중국 당나라 한상자(韓湘子)의 말처럼 “인간은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의 근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천년의 근심은 마음 언저리에 가득 찬 욕망이 원인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욕망을 채우는 기도에서 보리를 증득하고 불과(佛果)를 성취하는 수행으로 내용전환을 해야 한다. 붓다의 더없는 바른 깨달음은 중생을 위한 끝없는 자비구현으로 얻어진 것이다. 삶이 괴로운 이들은 바라고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붓다처럼 자비실천의 수행을 통해 보리회향(菩提廻向)을 해야 한다.

절집의 모든 정진과 불사에는 입재와 회향이 있다. 입재가 발심이라면 회향은 각자가 지은 선근공덕을 나와 이웃을 위해 함께 하는 것이자 법계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나의 수행정진을 통해 얻은 지혜로 뭇 중생들을 살피고 보호하는 것이 중생회향(衆生廻向)이며, 마침내 깨달음의 도량을 이루어 붓다의 삶을 배우고 익혀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 실제회향(實際廻向)이다. 참다운 회향이라 할 수 있다.

 

[불교신문2925호/2013년7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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