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3번은 꼭 

기도하러 가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① 설악산 봉정암의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

20년도 더 넘은 가을이었다. 프랑스인 50대 여성이 파리로 시집가서 사는 한국인 친구를 따라 서울에 왔다. 박물관, 경복궁, 동대문시장은 물론이고, 인사동에도 가고 경주에도 갔다 왔다. 돌아가기 일주일을 남겨두고 공양을 함께 하면서 한국에 온 소감을 물었다. 볼거리, 즐길거리, 음식이며 잠자리, 이런저런 것들이 다 좋다 한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 오면 영화에서 보이는 동양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너무 바쁘게 보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제안했다. 시간이 없기는 하지만, 2박3일 정도의 시간으로 한국의 산과 사찰을 방문하자고 했다. 흔쾌히 좋다고 해서 설악산을 선택했다.

일곱 명이 먹을 것과 텐트, 침낭을 챙겨서 백담사를 거쳐 오세암과 공룡능선을 탔다. 그 때는 국립공원이라도 야영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10월의 마지막 주말이었으니 그곳에도 인파는 많았다. 하지만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설악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그냥 알 수 있는, 태생적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오색으로 곱게 물든 단풍은 기본이고, 잘 생긴 바위와, 소나무와 폭포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국에 살면서도, 때가 되면, 늘 그리운 풍경이다. 밤에는 텐트를 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죽비치고 참선도 했다. ‘살아있는 고요함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경험하게 했다. 통역하지 않아도 서로가 공감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대청봉을 내려와 봉정암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은 이방인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했다. 대입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접수를 하고 방사에 번호가 있는 자리를 배정 받기는 했으나, 비좁아서 눕기는커녕 앉아서 다리도 뻗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냥 어디 가서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사리탑, 법당, 종각 밑, 심지어는 계단에서도 밤새 기도하는 수행자들의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본인도 어느새 그 분위기에 젖어들어 가는 듯 했다. 사리탑 언덕 위에서 비닐 덮은 담요 한 장으로 새벽이슬을 맞은 채 명상에 잠겼다. 생전 처음 듣는 염불소리도 귀에 익숙한 명상음악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어느새 새벽이 다가온다. 동이 트는 봉정암은 고요하다. 움직임이 있어도 고요하다. 소리가 있어도 소리가 없다.

5시 반이면 아침 공양이 시작된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의 아줌마였다. 반찬이라고는 달랑 오이짠지 서너 개가 전부다. 하지만 충분하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파리로 돌아간 뒤 또박또박 손으로 쓴 편지가 날아왔다. 짙푸른 잉크 빛 밤하늘에 영롱하게 박혀 있는,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 정적과 하나 되었던 참선, 그리고 봉정암의 미역국밥을 잊을 수 없다고 썼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이고, 설악산의 풍경을 떠올리면 저절로 행복해진단다. 한국의 가을을 선물한 내게 고맙다고 했다. 

   
②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고 했는가. 만물이 부처 아님이 없다.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치고 봉정암 미역국밥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이든 등산객이든 가리지 않고 시간대만 맞으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놓은 간단한 국밥이다. 하지만 받는 사람은 너무도 감사하다. 그러나 준비하는 사찰에서는 더 잘해주지 못해서 늘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그러시는지, 가끔 허름한 복장으로 ‘맛있게 드셔요’ 라고 인사하며 일일이 밥을 나눠주는 스님이 있다. 알고 봤더니 주지 스님이다. 그가 주지 스님이라는 것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 일을 자원해서 담당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부주지 스님에게 답을 들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사람들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인데, 좁아서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죄송해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리고 고마운 마음을 보태고 싶어서 그렇게 하신단다. 처음에는 몇 번 하다가 그만두시겠지 했는데 틈만 나면 그렇게 하신단다. 간단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주지 스님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남 앞에서는 일을 잘 안하신단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표가 나더라도 그만두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③ 사리탑을 향하여 합장한 곰바위.

사람들은 왜? 봉정암에 갈까? 새삼스런 질문이다. 하지만 늘 궁금한 질문이다. 평생에 3번은 꼭 기도하러 가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부처님 뇌사리를 모신 사찰이라는 것 정도의 대답으로는 답이 될 것 같지 않다. 나도 지금까지 열 번 정도 다녀 온 것 같다. 1년에 한두 번은 꼭 갔다 와야 하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다. 신심이 깊은 불자님들은 간절함이 더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고무신을 신고 봉정암을 갔다 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보살님들이다.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다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런지…. 답은 각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 뇌사리를 모시고 오랫동안 기도해온 원력의 힘을 후손들도 계속 이어 나가길 기도할 뿐이다.

봉정암에 가고 싶다.

   
④ 있는듯 없는듯 소담한 부도.

또 때가 되었나 보다. 세속에서 묻은 때를 씻고 싶은 것이다. 몸과 마음을 맑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봉정암에 갔다 오면 맑아진다. 봉정암에 가야 되겠다고 결정하면 무작정 간다. 내 무의식 속에는 이유 묻지 않고 받아주는 곳이 봉정암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제한적이다. 중요한 국립공원이라서 출입에 제한이 있다. 더군다나 3월, 4월은 산불방지를 위해 성지순례 오신 분들에게만 제한적으로 허락하고 있었다. 산은 겨울의 막바지와 봄의 출발 지점에 서 있었다. 남쪽에서는 벚꽃축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도 겨울이다. 군데군데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어서 미끄럽다. 조심해야 한다. 엊그제만 해도 눈이 내렸다. 겨우내 운동을 하지 않은 표가 난다. 호흡도 가쁘고 기운도 천천히 가자고 한다. 다른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려서 도착했다. 올해의 봉축표어와 함께 예쁜 연등이 달려 있었다. 사월초파일이 다가오는 것을 여기 와서 느낀다. 맨 먼저 사리탑에 참배를 하러 간다. 그동안 힘들었던 것보다 도착해서 사리탑에 올라가는 것이 더 힘든 것 같기도 하다. 서두르지 않으면 되는데 마음이 바쁘다. 사리탑에 도착한다. ‘먼 길 갔다가 이제 돌아와서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무탈하신지요?’ 하는 마음으로 절을 올린다. 부처님 제자로 잘 살지 못하는 과오를 참회하는 마음도 있다. 어떤 때는 하염없이 엎드려 있고 싶기도 한다. 하지만 밥도 제 시간에 얻어먹어야 하고 접수도 해야 한다. 저녁에 또 올라와서 참선한다. 찬바람이 아직은 차다. 무릎도 시리고…. 하지만 온 세상이 평화롭기를 기도하면서 잠시나마 ‘이 뭐꼬’ 속으로 사라진다.

   
⑤ 백담사 세심교에서 출발해 봉정암을 오르다보면 계곡에서는 기도객만큼이나 많은 돌탑을 볼 수 있다.

주지 스님은 천(千)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대작불사를 시작했다.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를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한걸음씩 발을 떼야 한다. 조실 스님께서 직접 올라와 상황을 판단하고 허락하셨다 한다. 내려가시는 어른 스님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그 사람 참 개구쟁이야’라고 말씀하셨단다. 물론 주지 스님은 못 들었고, 햐! 아랫사람의 가슴을 크게 해 주시는 말씀이시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⑥ 봉정암에서 본 석양.

어? 내가 왜 인사를 드리나? 그렇지요. 따지고 보면 내 일도 되고, 우리 모두의 일이니까요. 바람은 동쪽에서 부는데, 꽃은 남쪽에서 먼저 피네.

) [불교신문2906호/2013년4월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