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춘

 

                                               육근상

곤지 찍고 오셔요

색동옷 입고 꽃가마로 오셔요

밤 깊은 갈래길 따라 찬비 맞으며 오시는 임

한 송이 꽃 들고 오셔요

오래 인적 끊긴 빈 들 지나

흐린 하늘 아래

댕기 풀고 오셔요

흰옷 입고 땅을 차며 오셔요

 

언 땅이 녹고,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입춘 무렵부터는 봄소식이 온다고 했지요. 입춘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나,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라는 글귀를 서로에게 나눠주기도 했다지요. 이 시에서 시인은 봄을 ‘임’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사모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사모하는 임은 잘 매만져 곱게 꾸미고서 오신다고 말하고 있지요. 곤지, 색동옷, 꽃가마, 댕기 등은 얼마나 화려하고 고운지요. 그동안 임과 나 사이가 “인적 끊긴 빈 들” 같았으니 이제 임이 오신다는 전갈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소식인지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빈 가지에도 임은 오시지요. 땅을 쿵쿵대며, 빈 들을 밀어내며, 맑고 온화한 하늘 아래 반가운 임은 오시지요.

[불교신문 2890호/2013년 2월 23일자]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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