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식 전통 계승해 온 스님들 헌신과 종단지원 덕분”

 

60년대 송암스님으로부터 사사

각종 재 의식 3000여 회 설행

경제어산과 수륙재 가치 알리고

불교의식 참모습 재정립 필요

“재 중심으로 편중된 의식 벗어나

전통 소리의 중요성 부각시킬 것”

조계종 어산어장 동주스님이 지난 3일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3호 ‘경제어산(京制魚山)’ 보유자가 됐다. 불교전통 소리인 어산(범패)에서 조계종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종단은 잔칫집 분위기다. 그간 불교의식은 태고종의 전유물처럼 여겨왔다. 불교의식 중 가장 잘 알려진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의 맥이 신촌 봉원사를 중심으로 이어지면서 조계종은 불교의식에서 늘 후발주자였다. 동주스님이 이번 서울시 무형문화재 경제어산으로 지정되면서, 그동안 종단에서 어렵게 의식을 익히고 전승해온 스님들도 환영하고 나섰다. 문화재 지정이 종단의 불교의식 정립 및 대중화에 새로운 바람이 일 것으로 예상했다.

 

동주스님은 반세기가량 불교의식의 맥을 이어온 불교의식의 산 증인이다. “1964년 소리를 처음 배울 때는 문화재가 되겠단 생각보다 끊어지는 전통의 맥을 잇겠다는 생각뿐이었다”는 스님은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애써준 종단 스님들과 후배 스님들, 어산을 하는 스님들 모두에게 고맙다”며 초발심으로 돌아가 경제어산 등 불교의식 정립을 위해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경제어산은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불교 소리를 말한다. 전라도 충청도 소리가 경제어산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외에도 경상도 영재, 강원도 소리가 형성돼 있다. 서울이 어산의 조정(祖庭)이라고 할 수 있다. 동주스님은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당대 최고 어장으로 경제어산 전승에 남다른 족적을 남긴 송암스님으로부터 사사받았다.

동주스님은 불교 전통소리의 맥이 끊어질까 걱정스런 마음에 송암스님으로부터 처음 소리를 익혔다. 신촌 봉원사에서 머무르며 소리를 배웠는데, 당시만 해도 불교의식은 대처승의 역할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계종 스님들은 터부시 여겼다. 주위의 편견 속에서도 스님은 훌륭한 불교의식을 배워 후학을 가르쳐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고된 훈련을 이어왔다. 스님은 그 날 배운 내용을 100%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다음 진도를 나가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배웠다. 제대로 배워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은사 스님이 아침에 재 나가기 전에 15분~20분 소리를 가르쳐 주시면 혼자 남아 10시간씩 연습했다. 2시간 배우고 30분 남짓 연습하는 요즘 공부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당시에는 어회(魚會)란 게 있었다. 동.하안거 결제 때마다 모여서 불교 소리공부를 하는 스님들의 모임이었다. 스님은 어회뿐만 아니라, 1년 365일 중 350일은 연습하며 일과를 보냈다.

동주스님은 송암스님에게 서울을 중심으로 전하는 범음, 범패, 영산작법을 비롯해 바깥채비와 안채비 소리를 모두 배웠다. 불교의식에서 행하는 수륙재, 예수재, 각종불공, 시식, 점안의식, 다비작법 등 불교전통의식의 이론과 실기를 익혔다.

송암스님으로부터 모든 의식을 사사 받은 동주스님은 제방에 다니며 정진하다가 1980년 초부터 후학들을 지도했다. 주지 소임을 맡아 살던 서울 사자암에서 조계종 의식수련원을 열어 스님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 스님들에게 의례의식을 가르치고 싶었던 스님의 노력만으로 의식수련원을 이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조계종에는 의식이 전무했다. 지금도 재 지낸다고 하면 태고종 봉원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조계종 스님으로서, 또 의식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종단 의례의식을 복원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오랜 서원 끝에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조계종 출범 이후 처음으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조계사에서 영산재를 재현한 것이다. 영산재 시연을 위해 4개월간 맹연습을 한 끝에 조계사 마당에 선 스님은 감회가 남달랐다. 10시간 이상 서서 의식을 집전하면서도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당시 100% 복원하겠다는 원력을 세웠지만,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첫해에 40%를 시연하고, 이듬해 30%, 마지막 해에 30%를 복원하려고 했지만 대중적인 바라춤이나 회심곡에 대한 요청이 많아 70%정도 복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00% 복원하지 못했지만 영산재를 재현한 성과는 있었다. 의식에 대한 스님들 인식이 전환된 것이다. 의식을 배우고 싶어 하는 스님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종단의 생각도 바뀌었다. 2006년 스님은 조계종 최초의 어산어장이 됐다.

조계사에서 영산재 시연하는 동주스님(가운데).

불교의례의식에 대한 시선들이 달라지면서, 스님이 그토록 원하던 범패를 가르칠 수 있는 터전이 다져졌다. 조계종 교육원이 불교상용의례를 승가대학 표준교과로 지정했다. 스님 역시 지난 2010년 종단 특수교육기관인 한국불교 전통의례 전승원을 개원해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 무형문화재 경제어산 지정을 계기로 스님은 불교소리 복원과 전승에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정오스님(조계종 염불교육지도위원)과 불찬범음연구소장 혜일스님 등 후배들과 함께 경제어산과 어산의 결정체인 수륙재 복원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원력도 세웠다.

특히 불교 전통소리를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범패의 역사는 신라말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배워온 것으로 시작된다. 1100 여년의 역사를 지닌 범패는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50호로 지정되면서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50호가 소리, 작법, 도량장엄이 종합된 영산재로 재지정되면서 불교의식이 재 위주로 재편된다. 스님은 “범패가 소리의 전승보존에 힘을 실은 것이라면 영산재는 재 의식 중심”이라며 “영산재라는 단체종목이 되면서 결국 불교의식의 문화적 가치가 재 의식 중심으로 재편됐고 결국 소리의 전문성이 상실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전승원을 통해 어산의 맥을 전하고, 잘못된 의식이나 인식을 바꿔나갈 것이다. “영산재가 마치 모든 의식을 대표하는 것처럼 오늘날 인식돼 있는데 사실상 그렇지 않다”는 스님은 “요새는 영산재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불교대표의식이라고 생각되지만, 우리가 말하는 영산재는 영산작법으로 수륙재의 한 부분이고, 실제 불교 옛 의식의 근본은 수륙재”라고 설명했다.

수륙재는 이승과 저승의 모든 중생을 위로하고 차별없이 공양을 베푸는 평등한 재의식이다. 수륙재를 봉행하기 위해서는 전해지는 모든 어산의 소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만큼 심오한 분야고, 깊은 수행이 요구되는 의식이다. 동주스님 역시 수륙재를 재현한 것은 13번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의식이기도 하다.

스님은 “수륙재 복원을 통해 한국불교 전통 재의식을 바로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동주스님은 1969년 송암스님에게 수륙재를 사사받았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에 수록된 54편의 불교의식을 자세하게 배우고 지금까지 수륙재 및 각종 재 의식을 3000여회 시연한 내공이 뒷받침해줄 것이다.

스님은 불교의식이 잘못 전해지고 있는 세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왜곡된 것도 모자라 기능적이고 예능적인 면만 강조되면서 종교의식으로서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를 지내는 사람도 주최한 사찰도 수륙재나 영산재 차이를 모르고, 이름 붙이기에 따라 수륙재가 되고 영산재가 되는 현실”이라며 “장엄한 의식이 아닌 공연으로 전락했다”고 탄식했다. “영산재가 중요무형문화재가 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음에도, 오늘날에는 불교의식이 주는 거룩함이 퇴색됐다”며 “그저 보여주기 위한 ‘쇼’ 같다는 생각이 들면 서글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제어산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스님은 종단의식을 새로 정립하는 데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불교전통의식이 마치 태고종 스님들의 것처럼 여겨졌던 그간의 인식을 벗어나 조계종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불교의식을 구성하는 소리의 보존가치를 알리는 것은 물론 의식전통을 바로 세우고, 저변확대에 나서 조계종이 불교의식분야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스님은 경제어산 선율과 운곡을 기반으로 한 우리말 의식의례를 완성하고,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경제어산과 수륙재의 가치를 알리고 불교의식의 참모습을 재정립할 것이다. 동주스님은 “불교 어산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며 “이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경제어산과 수륙재 보급과 함께 수륙재를 근본으로 하는 불교의식 복원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 어산이란…

어산은 불교음악을 총칭하는 말이다. 안채비와 바깥채비 소리로 나뉘는데, 비율이 7대3으로 안채비 소리가 많다. 안채비 소리는 재를 올리는 법주(法主)가 유치(由致), 청사(請詞)와 같은 축원문을 요령을 흔들며 낭송하는 것으로, 촘촘히 글을 읽어나가는 소리이다. 20여 가지 불공과 예수재, 수륙재가 주로 안채비며, 점안식 할 때나 49재, 각종 천도재, 시식, 다비식 등 전부 안채비다.

바깥채비에는 짓소리, 홑소리 등이 속하는데, 7언 혹은 5언 4구로 구성된 산문, 시조를 혼자 염송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신문 2878호/ 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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