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관광 아닌 수행방편

세상과 만나며 수행결과 점검

순례자는 성스러운 종교의식 집전자

부처님 가르침 오롯이 실천하는 현장

순례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겨울추위가 맹위를 떨치지만, 건기가 시작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이맘때가 가장 순례하기 좋다. 그래서 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겨울이 되면 불교가 시작된 인도를 비롯해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의 불교국가로 향한다. 부처님 열반 후 2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이들을 만나 신심을 기른다.

불교의 순례역사는 부처님 때부터 시작됐다. 길 위에 나서 길에서 입멸하신 부처님께서는 평생 순례를 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의 순례길은 중생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법을 전하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겨 길을 떠나라”고 전도선언을 하신 이후 입적하는 그날까지 한사람이라도 더 만나 법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순례는 여행도 아니요 관광도 아니다. 순례는 수행의 방편이다. 해제 때마다 스님들이 떠나는 만행 역시 순례라고 할 수 있다. 스님들은 구름처럼 흐르는 물처럼 걸림없이 법을 찾아 운수행각을 한다. 그 사이 세상과 만나며 오랜 수행의 결과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구법순례인 셈이다.

세계불교사를 되짚어보면 많은 스님들이 법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음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해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시대가 아니다. 천축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겨야만 도달하는 곳이었다. 눈 덮인 산을 넘고, 사막을 지나거나 바닷길에서 몇 달을 지내야 천축에 갈 수 있었다. 무사히 도착했다고 해서 되돌아오는 법도 없다. 구법의 열정으로 길을 나섰다가 주검이 돼 돌아온 스님들이 허다했다. 10명이 떠나 2명이 살아 돌아오기 힘든 고행의 길이다.

하지만 많은 스님들이 법을 찾아 떠났고, 그 결과는 깨달음으로 드러난다. 깨달음의 꽃을 피우는 게 순례다. <서유기>의 모델이기도 한 중국의 현장스님은 15년8개월 동안 인도 전역과 중앙아시아 일원을 순례하고 <대당서역기>를 썼다. 목숨을 건 구법여행 후 인도에서 수많은 불교경전을 가져온 현장스님은 한문으로 번역해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불교에 큰 족적을 남겼다. 또 최초의 인도여행기인 법현스님의 <불국기>나 신라의 혜초스님이 약 4년간 인도와 서역에서 구법여행을 한 뒤 쓴 <왕오천축국전>에는 부처님 가르침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구도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법을 위해 몸이 망가지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것까지 피하지 않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이 느껴진다.

구도자들의 구법정신이 오늘날에 순례로 재탄생했다. 내년에 신설되는 교육원의 연수교육 중 순례과정이 그것이다. 부처님의 발자취인 인도 8대 성지순례와 한국에 선불교를 전한 도의국사가 수행하던 우민사를 비롯한 중국의 선종사찰 순례,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의 불교 현주소를 엿보는 여정도 더해졌다. 이 또한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불교가 탄생지 인도에서, 문화혁명 이후 불교가 되살아나고 있는 중국에서, 토속신앙과 결합돼 새로운 불교가 자리 잡은 일본을 보며 견문을 넓히는 것은 물론, 옛 스님들의 위법망구 정신을 되살려보는 순례의 시간이 될 것이다.

수행은 머물러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늘 역동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순례가 그렇다. 중생이 다가오길 바라지 말고 중생에게 먼저 다가서는 것이 이 시대 수행자이며, 부처님 법의 상속자가 되는 방법이다. 순례를 하는 순간 우리는 성스러운 종교의식의 집전자이며, 부처님 가르침을 오롯하게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중생을 위한 순례의 길을 떠나자.

[불교신문 2877호/ 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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