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조선

김호귀 지음/ 도피안사
불교는 현대인의 고뇌 어린 질문에 모두 답해야 하는 숙명적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 묵조선의 사상을 수행으로 실천해 나아가는 불교수행법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엮어진다. 고뇌의식으로부터 출발한 불교의 가르침은 일관되게 깨침의 추구를 향한 행위였으며, 그 두 축은 지혜와 자비이고 중생제도와 깨침을 위한 수행으로 집약된다.

더욱 선은 깨침의 추구가 본질이고 선법의 특징을 가장 잘 구현시킨 선풍이 조사선(祖師禪)으로써, 이는 중국 송대에 이르러 간화선과 묵조선으로 이원화된다. 당 시대 달마조사의 조사선부터 간화선 묵조선 모두 조사선풍이 바탕이지만 수행 방식은 다르다.

그중 화두참구의 간화선이 깨침 자체가 목표가 되면서, 좌선수행에서 묵조선과 차이를 둔다. 저자 김호귀 동국대 연구교수는 “묵조선은 좌선수행을 통해 본래성불의 도리를 지금 그 자리에서 몸소 구현하는 수행방식”이라 말한다.

좌선의 상구보리하화중생 이론구성

몸의 좌선과 마음의 자각이 곧 공안

애초 인도에서의 관법이 중국의 달마선사에 의해 조사선 선법으로 출현하면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본유함을 믿고 자각하여 그것을 일상의 삶에서 구현하는 선풍이 일기 시작했다. 이는 당 시대에 부흥하면서 선종오가(禪宗五家)로 나눠졌다가 송대의 조동종과 임제종 계통에서 수행법에 차이를 둔 묵조선과 간화선이 대종을 이룬다.

책은 수행 실천의 방식에서 선의 본질을 찾는다. 집착이 없는 실천인 무소구행(無所求行)부터 인연에 따른 실천인 수연행(隨緣行), 전세의 원한에 인한 실천인 보원행(報怨行), 그리고 법의 본성에 계합된 실천인 칭법행(稱法行) 등으로 자리이타가 어떻게 깨침의 길로 이끌어 가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진실한 이법(理法)은 생존한다는 더러움을 초월했기 때문에 아(我)라는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가르침의 본체에는 모든 것을 아깝다고 보는 것이 없으므로 신체 목숨 재물에 있어서 보시를 행하는 마음에 아쉬워하는 바가 없다.”

이어 저자는 “자신과 보시물이 원래 공함을 알아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얽매이지도 않고, 단지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도우며 형태에 집착하지 않고 자리와 이타로 삼아 깨침의 길로 이끌고 나아가는 것”이라 규정했다.

묵조선의 본질인 좌선수행에 매진하는 스님들의 선원. 불교신문 자료사진
저자는 간화선과 묵조선의 차이를 통해 묵조선의 본질을 보다 명확히 설명한다. “간화선이 번뇌를 다스리고 깨침에 도달하려는 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라면 묵조선은 좌선수행을 통해 본래자성을 자각하는 것, 곧 ‘묵조의 방법’이라면 방식의 기준을 넘어 선의 본래 성격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묵조선이 그대로 선이라고 규정한다.

구체적 설명은 이렇다. “구체적 수행 방식에서 현실을 깨침의 모습으로 긍정하고 진리에 대해 묵()의 모습으로 조(照)한다는 점은 화두참구를 통하여 깨침을 추구하는 간화선 및 일체의 신(身).수(受).심(心).법(法) 등을 대상으로 관찰하는 관법과도 다르다.”

이런 접근은 묵조선 접근에서 선종의 역사 탐구가 필수적이며 묵조선이 창출된 조동종의 출현과 그 종지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함을 일깨운다.

저자의 주장은 “묵조선은 바로 그 좌선의 역사”에 모아진다. “좌선은 인도의 불교에서부터 중국으로 전승되면서 언제나 선의 모습 내용으로 달마가 중국에 전승하려고 했던 것도 여법한 좌선이고 면벽좌선은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의 상징이다.”

저자는 나아가 “달마의 좌선은 수행을 넘어 깨침이었고 깨침을 넘어 사람들에게 수행과 깨침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교화행의 모습이었다”면서 “달마는 후에 관세음보살의 화현으로 등장해 홀로 수행에 매진하는 행위가 단순한 소승적인 수행자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수행과 깨침과 교화의 전형적인 행위와 모습으로 드러난 부처님의 좌선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책은 묵조선의 사상적 특징인 ‘불성이 이미 구현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본래성불’에 초점을 두고, 본래성불을 자각하기 위한 좌선수행에서 지관타좌(只管打坐)를 통한 본증자각(本證自覺)을 관통하고 있다. 특히 좌선을 통해 자신의 완전성을 자각.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둔 수행방식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수행과 깨침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흔히 말하는 현성공안(現成公案)이란 용어를 두고, “몸의 좌선과 마음의 자각이 공안이고 깨침으로 현성되어 있다”라고 해석한다. 결국 공안은 깨침으로서 본래성불의 구현이기에 묵조선의 사상구조는 좌선을 통한 깨침이 본질이고 목표이며, 이는 본증의 자각이 자신이 일상적인 삶에 투영돼 있어 현성공안이란 특징을 보여준다고 구조적으로 연결한다.

저자는 묵조선의 수행에 좌선의 지위를 깨침 바로 그것에 둔다. 수증일여(修證一如)의 용어를 통해 “좌선수행은 깨침의 완전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고 깨침의 완성은 좌선이라는 수행의 행위로 작용한다”고 규정했다. 또 본증묘수(本證妙修) 용어에서 “깨친 상태에서 추구하는 수행으로서 깨침의 유지이고 일상의 실천”이라 설명한다.

저자는 독특하게 “수행은 깨침의 수행이고 깨침은 수행의 깨침”이란 구조에서 “조사와 보살은 깨침의 실천에서 상구보리이고 수행의 깨침에서 하화중생”이라며, 묵조선의 사상과 수행에 대한 일관된 해석을 내놓는다. 

[불교신문 2855호/ 10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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