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화쟁위원회·불교신문 공동기획] 세 개의 달 3부 <22>

말해놓고 조금 부끄러운 듯 요석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눈동자만큼은 흔들림 없이 맑고 투명하게 원효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동자 속에 든 눈부처를 바라보는 찰나가 영원임을 그 순간 알았다. 영원이란 시간성을 벗어난 말이로구나.

영원이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현재로구나. 깨어있는 현재만이 영원이구나!

서라벌은 혼돈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맑고 찬 가을 하늘 아래 서라벌 전역에 일렁이는 슬픔은 곡진한 형태의 분노라 일컬을만했다. 백성들은 읍성, 릉원, 흥륜사, 나정, 낭산 아래 가마터에 이르기까지 서라벌의 모든 곳에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씩 모여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구나.” 단의 노래를 부르며 서로 어깨를 기댔고 사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가슴을 치곤했다.

꽃을 들고 삼삼오오 걸어가는 행인들이 있는가하면 금세 어딘가에 모여 서서 노래를 함께 부르다가 또 어딘가로 무리지어 움직여갔다. 움직이고는 있으되 딱히 갈 길이 정해져 있지는 않은 기이한 혼돈의 상황이었다. 웅성거리며 끓고 있었으나 무엇이 되어 나올지는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과 묘한 기대감이 거리마다 가득했다.

“돌아가라! 명이다. 집으로 돌아가라!” 거대한 파도가 서서히 밀려들고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군병들이 바삐 오갔다. 말 탄 장교들은 백성의 무리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해산을 종용하기도 했다.

서라벌 외곽에서 모여든 천여 명의 사람들이 남산 아래서 행렬을 만들어 남천을 건너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시각, 원효는 분황사를 나설 차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지내는 젊은 비구 몇이 서라벌의 동서남북 사정을 파악한 후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월성의 사방 문은 굳게 닫힌 채 아무런 기척이 없다고 했다.

임금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원효는 여왕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 “백성이 드나들지 못하는 황룡사 지척에 분황사를 창건하신 일은 중도의 실천으로 적법합니다. 파격을 통해 균형을 이루었으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진정한 중도에 이를 것입니다. 혹시 폐하께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임금을 대면했을 때 원효가 고하였던 ‘한 발 더 나아감’이란 무엇이었을까. 여왕은 원효를 똑바로 쳐다보며 웃을 뿐 말이 없었다. 어쩌면 여왕도 원효도 모색하는 중일 뿐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단계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분황사에서 일 년을 보내면서 원효는 깨달은 게 있었다. 분황사의 창건은 결핍을 적극으로 채워 균형을 이룬 것이었으되 그로 인해 결코 건널 수 없는 두 세계의 경계가 절벽처럼 공고해진 것이기도 했다. 부처님 말씀은 하나이건만 귀족은 귀족의 절에 백성은 백성의 절에만 드나들게 된 것이다.

표면의 균형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융무애한 내적 회통을 이룰 수 있는 방법, 황룡사가 백성에게 개방되고 분황사에 귀족이 왕래하며 부처의 마음으로 민의를 읽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또 한 번의 파격을 필요로 하는 일일 터였다.

파격은 어떻게 도래할 것인가. 석탑 옆 미륵불의 상호에 맑은 햇빛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원효는 생각했다. 바야흐로 서라벌 도심에서 무언가 일어나려는 이 일렁임들이 중도를 향한 파격의 어떤 징후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백성들로 북적이던 분황사 경내가 오늘은 텅 비어 한적하였다.

사찰이 아닌 저잣거리, 백성의 마음이 간절하게 모여 든 곳이 바로 사찰임을 신라의 백성들은 보여줄 것인가. 여왕이 꿈꾸는 하늘우물이 지어져야 할 곳도 백성들이 스스로의 내부에서 부처를 꺼내어 봉안하는 바로 그 자리여야 할 것이다.

혜공스님과 아미타림의 벗들이 하늘 우물이 지어질 장소에 대해 의논할 때 월성 내부가 아니라 백성들이 오가는 곳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심전심. 여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동의하였다. 애초부터 그것이 여왕의 뜻이기도 하였으므로.

문득 요석이 보고 싶었다. “그대는 요석을 특별히 살펴 달라”고 여왕은 원효에게 부탁하였으나, 요석은 원효가 살피고 말고 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그녀의 길을 갈 뿐이었다. 비담의 병영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분황사에 들어올 때 요석을 잠시 만난 이후 겨울이 다 지나도록 요석은 분황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입춘 날과 백중 기도 때 보았을 뿐이었으니, 봄과 여름에 한 번씩 본 것이었다. 입춘 날 요석은 감로정 옆 흰 백일홍 나무 아래서 이런 말을 하였다.

“하루가 영원 같습니다. 제 속의 모든 생각이 완전히 쉬며 온 마음이 원효스님의 심신의 회복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오니 스님이 저의 현재이십니다. 스님이 저의 영원입니다.” 말해놓고 조금 부끄러운 듯 요석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눈동자만큼은 흔들림 없이 맑고 투명하게 원효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동자 속에 든 눈부처를 바라보는 찰나가 영원임을 그 순간 알았다.

영원이란 시간성을 벗어난 말이로구나. 영원이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현재로구나. 깨어있는 현재만이 영원이구나! 어느 순간 맹렬한 허기를 느끼듯 갑자기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하오니 속히 회복하소서.” 한 마디를 덧붙인 후, 언제 수줍은 고백을 했냐는 듯 금세 당당하고 싱그러운 웃음을 담뿍 터뜨리고는 요석은 옷자락을 나부끼며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비담의 병영에서 겪은 지옥으로 인해 겨우내 괴로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던 원효의 내면은 그날 이후 이상스레 평화로워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원효는 요석이 이미 자신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들였다. 원효로서는 마땅히 요석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지만 요석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원효의 내부에서 발아하기 시작한 요석에 대한 마음은 여인을 동경하는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무엇이었다.

누군가가 원효에게 요석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에 그녀는 찾아왔고, 가장 좋은 도반과 더불어 험난하고 긴 길의 초입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 그대로 충일하고 평화로웠다. 요석의 존재가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일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녀의 존재가 원효의 갈 길을 또렷이 비추고 있었다.

“이루셔야 합니다.” 운제산으로 길 떠나던 때 오동꽃 아래에서 요석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생생히 기억했다. 요석은 부처를 이루라 말하고 있었고, 또한 스스로도 부처의 길을 가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명경이 되소서. 소녀는 지수가 되겠습니다.”

볼 때마다 요석은 물이 오르는 나무처럼 왕성하고 물 흐르듯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었다. 부드럽고 강했으며, 해맑고 성숙했고, 천진하면서 의젓했다. 요석의 희고 투명한 얼굴은 여전히 여릿하고 평화로웠으나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뜨겁고 깊게 스스로를 몰아가는 열정의 기운이 강렬히 배어 있었다.

맑음과 공존하는 뜨거움의 한편에는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비애의 느낌이 서려있기도 했다. 세상의 비천한 그늘들을 알고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을 법한 비애의 느낌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요석 스스로가 자신 속에 똬리 튼 비애의 거처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비애를 선의와 희열로 다스려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작 열여섯 살인 요석은 그래서 더욱 경이로웠다. 열여섯의 자신이 격렬한 통증을 겪으며 건너왔던 화랑도 시절을 생각하면 치기 어린 소년이었다는 느낌뿐이건만, 열여섯의 요석은 자유분방한 소녀 속에 때로 관음보살이 들어 앉아있는 듯했고 때로 어머니 같았으며 무엇보다 치열한 구도자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저에게도 이루어야 할 저의 몫이 있습니다. 스스로 깨쳐야할 저의 길이 있는 거지요. 도전해 보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원효에게 부처를 이루라 격려하는 한편 요석은 스스로가 부여한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따라가기를 원했다.

요석이 지닌 싱싱한 연둣빛의 기운은 원효를 은애하는 일에 마음의 최선을 다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의 삶에 부과한 자신의 꿈을 좇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예컨대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요석이 ‘명경지수’를 말할 때, 원효의 뇌리 한 녘이 먹장구름이 터지듯 툭 열리며 ‘고요한 물’과 ‘요동치는 물’의 형상이 함께 떠올라왔다. 고요한 물인 명경지수(明鏡止水). 그것은 아마도 太虛(태허)일 것이다. 태허는 자기 자신을 비롯해 외부의 타자를 잘 비출 수 있는 물의 상태. 요동치는 물을 다스려 고요한 물에 이르게 하는 것이 수행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이 두 개의 문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공존하며 인생을 이루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명경지수의 마음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아마도 오늘은 요석을 보게 되리라는 생각에 원효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볼 수 있어 좋다는 액면 그대로의 감정과 더불어 그간의 내적 성장을 서로 확인하고 싶은 구도의 열정을 동반한 것이었다.

황금송 위에서 반갑게 까치가 울었다. 깊은 숨을 들이쉬며 원효가 분황사 일주문을 막 벗어날 때 황룡사 방향에서 걸어오던 흰새와 수파현이 때마침 달려왔다.

“이크, 한발만 늦었으면 형님 놓치고 요석낭주께 혼날 뻔 했네.” 흰새가 숨이 턱에 차 말했다. “랑!” 오랜만에 본 수파현은 날듯이 달려와 원효 앞에 합장하였다. “요석낭주께서 우린 형님 곁에 꼭 붙어있으라 했소.”

흰새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원효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귀족들이 불안하긴 한가 봐요. 서라벌 어느 귀족 집안에서 황룡사 일주문에 금칠 공양을 한다고 제단 차리고 예불 모시고 아주 쌩 난리를 치네, 지랄용천! 멀쩡한 일주문에 오늘 같은 날 웬 금칠이야? 구경하다 우리가 좀 늦었네요 형님.”

원효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며 수파현이 흰새를 쿡 찔렀다. 단의 1주기. 어차피 들러야 할 황룡사였다. 원효 일행은 황룡사 일주문의 반대편으로 에둘러 서문 쪽으로 갔다. 서문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높다란 담장 아래 장륙존상이 바라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꽃들이 수북하였다. 백성들이 산과 들에서 꺾어다 놓은 것이 틀림없는 흰빛 구절초와 보랏빛 개미취 꽃들이 어우러져 담장 밑이 때아니게 화사하기까지 했다.

흰빛과 보랏빛 속에 더러 황국 가지가 섞여있기도 했고, 누군가는 붉게 익은 꽈리열매가 탐스럽게 달린 가지를 꺾어다 놓기도 하였다. 원효의 눈시울이 더워지려는 순간, “깨끗이 치워라!” 말을 탄 장교가 휘하를 거느리고 지나가며 명령하는 소리가 들리고, 짝을 지은 병사 둘이 득달같이 달려와 담장 밑의 꽃들을 쓸어 자루에 담고 발로 꾹꾹 밟아 부피를 줄인 후 질질 끌고 갔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구나, 서럽구나 우리네여, 공덕 닦으려오다…… 남루한 의복의 아이들 둘이 손을 꼭 잡은 채 노래를 부르며 다가와 시들어가는 흰빛 구절초 한 송이를 텅 빈 담장 밑에 다시 놓는 것을 뒤로 하고 원효는 몸을 돌려 일부러 피해온 일주문 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흰새와 수파현이 뒤따르며 근심어린 표정을 하였으나, 화가 나거나 슬퍼하는 얼굴이라기보다 기묘한 적막이 감돌고 있는 원효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를 흰새와 수파현은 알아채지 못했다.

읍성 장터에서 소용돌이치던 백성의 무리는 이제 장륙존상이 보이는 황룡사 담장을 목적지로 삼아 겹겹의 물결을 이루면서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장을 마친 법당군단의 군병들이 백성의 물결을 진압하러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월성의 문이 열렸다는 소식이 왔다. 여왕의 행차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물결이 출렁였다. 그 시각, 황룡사 일주문에 이른 원효로부터 장엄하고 깨끗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처 앞에서 빌지 마시오!”

[불교신문 2853호/ 10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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