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강급사 소명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편지①-3

본문 : 간혹 조금만 드러내더라도 자연히 산승의 가려운 곳을 긁게 될 것입니다. 예컨대 세존께서 산에서 나오신데 대한 게송(出山相頌)에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속인다”라는 말은 가히 총림에 눈을 뜨게 하는 약(點眼藥)이 됩니다.

그대가 다른 날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산승이 주해를 달아서 부정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내가 근래에 그대의 모습을 보니 문득 많이 달라져서 이 일을 위해서 매우 힘쓰는 것 같기에 짐짓 이 편지를 씀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강설 : 불교에서 경학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경전에 근거하여 논문이나 소(疏)나 초(抄)라는 글을 통해서 경문의 내용을 부연설명을 하며, 시대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하는 글을 많이 써서 세상에 남기는 것을 전법포교의 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선불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가 다소 남다른 점이 있더라도 글이나 말로 잘 표현하지 않는다. 만약 단 한편의 글이라 하더라도 특별하고 뛰어난 안목이 있어서 만고에 교훈이 된다면 이참정처럼 남겨도 좋다는 점을 말씀하고 있다.

사람사람 모두다 본래 부처님

“청천백일에 사람을 속이지 말라”

그런데 불교에는 경, 율, 논 삼장 외에도 선장(禪藏)이라 하여 선문에 관한 글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선문들은 그냥 써진 것은 하나도 없다. 아무리 많더라도 그 모두가 투철한 깨달음에 근거한 표현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참정은 세존이 설산에서 수도생활을 마치고 깨달음을 이룬 뒤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산에서 나온 점에 대하여 출산상송(出山相頌)이라는 글을 지었는데 그 중에 한 구절이 천하총림의 선객들의 눈을 뜨게 하는 약(點眼藥)이 되었다고 하여 찬사가 자자하였던 것을 밝혔다.

참고로 그 게송은 이렇다.

안피개진삼천계(眼皮盖盡三千界)

비공성장백억신(鼻孔盛藏百億身)

개개장부수시굴(箇箇丈夫誰是屈)

청천백일막만인(靑天白日莫謾人)

돌(咄), 도처봉인맥면기(到處逢人驀面欺)

“눈꺼풀은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감싸고 콧구멍은 부처님의 백억화신을 전부 감추었네. 개개인이 모두 대장부이거늘 누가 굽히겠는가. 청천백일에 사람을 속이지 마라. 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속이도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헌칠한 게송이다. 간략히 부연설명하면, “세존이 성도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일이 도대체 당치도 않는 일이다. 사람사람 모두가 본래로 부처가 간 곳을 따라가지 않는 대장부다. 그래서 각자의 능력이 눈꺼풀로는 삼천대천세계를 감싸고 콧구멍에는 백억화신을 감추었다. 달리 무슨 부족함이 있어서 제도한다는 말인가? 본래로 부처이거늘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지 마라. 세존의 49년 교화가 모두 틀렸다(돌). 그런데 세존은 아직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속이고 있구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송에도 인불사상(人佛思想)이 깔려있다. 사람사람이 모두다 본래로 부처이거늘 누가 누구를 제도한다는 말인가. 굳이 만약 제도한다면 본래 부처인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을 중도적 견해에 의한 제도라고 할 것이다. 깨달음의 안목과 그 표현이 이쯤은 되어야 세상에 내어 놓을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대혜선사는 강급사가 되지도 않는 글을 자꾸 써서 보내옴으로 꾸짖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불교신문 2842호/ 8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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