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정법(淨法)

노란색깔 콩은 꽃도 노란 색일 것 같고, 자주색깔 팥은 꽃도 자주색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 알고 보면 콩꽃 중에는 자주색이 많고 팥꽃은 노란색이 대부분이다. 열매와 꽃이 같은 색깔일 것이라는 추측이 이러한 오해를 낳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만큼은 속과 겉이 같았으면 하고 바라고, 어떤 직위를 맡기 전과 후에 그 사람의 처신이나 인격에 항상 변함이 없기를 기대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승가의 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승가의 율은 언제나 엄격하고 철두철미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며, 부처님 당시에는 아마도 더 철저히 지켜졌을 것으로 추측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러한 추측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부처님 당시에도 승가에는 무수히 많은 예외조항들이 적용되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승가는 꽉 막힌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이는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부터 이미 허용된 규정으로 승가가 여러 가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가기 위해 적용된 일종의 편법이었다. 이를 가리켜 율장에서는 정법(淨法, kappa)이라고 부른다.

맑을 ‘정(淨)’을 가리키는 정법의 원어(kappa)에는 원래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나, 율과 관련된 용어로 쓰일 경우에는 ‘적절하다’ ‘타당하다’ ‘상응하다’ 등으로 해석한다.

승가 엄격하게 계율 지키면서

예외조항으로 시대흐름 맞춰

따라서 ‘정법’ 이란 단어가 율에 적용될 때에는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 ‘죄에 저촉되지 않는다.’ 라는 의미를 담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키기 곤란한 율장의 조문을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약간의 편법을 이용하여 스님들이 죄책감을 갖지 않고 합법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바로 정법이다.

알려진 바대로, 율 속에는 너무 엄해서 현실적으로 도저히 지켜내기 어려운 조항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돈을 만지거나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스님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보시를 하는 재가자들도 물건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보다는 돈으로 보시하는 편이 훨씬 더 편리해졌다.

그러다보니 스님들에게 물건 대신 돈으로 보시를 드리게 되었는데, 초창기 스님들은 율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보시를 거절하곤 했다. 그러나 화폐유통이 확대되면서 돈으로 보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겼다. 그러므로 승가 또한 돈을 만지지 않고도 그것을 받는 방법을 고안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승가가 생각해낸 대안은 이러하다. 누군가가 돈을 보시해주면 그것을 스님들이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승가의 일을 돌봐주는 특정 재가신도(淨人)나 믿을만한 이에게 맡겨놓는 방법이다. 스님이 돈을 사용할 일이 있을 때에는 돈을 맡고 있는 신도에게 가서 ‘~을 알라.’ 라고 말한다.

그러면 신도는 ‘아, 스님이 지금 무엇이 필요하구나.’ 라고 알아서 맡아두었던 돈으로 물건을 사서 스님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돈을 만지지 않고도 스님은 무리 없이 물건을 구해 쓸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것을 악용한 재가자들이 있었으니 믿을 만한 신도를 구하는 것 또한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처럼 원래는 죄에 저촉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그에 대한 처벌을 무효화시키고자 한 것이 ‘정법’이다. 자신이 직접 소유하지 않고 다른 이를 통해 금지된 물건을 소유하는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명백한 답을 얻기 어렵다.

다만, 율장의 조문이 유동적인 것이었다면 언제든 개정을 통해 변경 가능했겠지만, 율 조문은 지난 2,600년 동안 승가 안에서 고정불변의 원칙이 되어 수계를 통해 고스란히 전승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승가가 제한적으로나마 ‘정법’을 승인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율장은 지금 보아도 훌륭한 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현대불교에 그대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점점 더 ‘정법’을 확대해가며 본래 율이 가지고 있던 엄격한 규정을 완화해갈 것인지, 아니면 율장의 본질에 맞게 이 시대에 필요한 규정을 정비해갈 것인지, 지금이야말로 결단하고 추진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불교신문 2829호/ 7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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