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대한제국 황실도서관이었던 서울 중구 정동의 증명전(사적 124호)을 중심으로 문화거리 조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재호 기자

“2004년 세계박물관인대회 조직위원장 당시 초청된 해외 박물관 관계자들이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으로 템플스테이를 꼽았다.” 그런 템플스테이가 장기적 인기프로가 되는 방안으로 그는 ‘수익우선주의 배제’를 지적했다. “전통사찰 보존을 위한 템플스테이니만큼 시설개수에서 편의시설 보완에 그쳐 기본적 사찰분위기를 훼손해선 안된다.”

그의 지론은 템플스테이와 대량 인원이 한꺼번에 숙식하는 연수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전통사찰이 매개가 된 문화교류의 터전으로 템플스테이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외국상사 한국 주재원의 자녀들과 한국인 청소년들이 1대1 대면 프로그램을 열면 상호교류의 폭도 넓어지고 만족도도 키울 수 있다.”

빈발하는 학교폭력과 게임중독이란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책도 템플스테이에서 찾아낸다. 여기서도 일방성을 거부하는 ‘문화교류’의 힘을 믿는다.

“사찰에서의 불교식 강한 전통의 힘이 교류의 중요한 매개체이다.” 그는 지난해 출범한 불교포럼 공동대표이다. “불교포럼은 불교 엘리트의 충원과 배출의 코스로서 청소년 인성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불교가 타종교에 비해 소극적이 아니라 느림의 가치와 내면을 들여다보는 힘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색과 자기성찰의 힘은 재가불자들에게 치유 능력도 준다. 이것이 불교포럼의 가능성이다.”

가능성에 대한 집중은 문화에서 중요한 생산력을 보여줬다. 갓 탄생한 문화유산국민신탁이그의 취임 후, 처음 회원 200여 명에서 이제 3000명을 돌파했다. 망실 문화재가 많은 우리 현실의 타개책으로 새로운 문화운동을 그가 주도한다.

올해의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문화유산은 모두의 공동 재산

후대 전달하는 소명의식 키워야

민간 기금으로 문화유산을 보존 관리하는 법인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2007년 ‘문화유산과 자연환경 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을 근거로 설립된 후 현재 관리 중인 건물은 모두 7곳. 울릉도 도동의 울릉역사문화체험관(1910년대 건축 일본식 집)과 전남 보성군 벌교읍 보성여관(조정래 작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의 남도여관 실제 모델), 경기 군포시 동래 정씨 ‘동래군파 종택’ 등이 대표적이다.

개인이 기부한 ‘종택’은 지난 2011년 가을 첫 국악공연이 펼쳐졌고 현재 예약하면 24절기에 맞춘 전통농사도 체험을 함께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서울 종로 ‘이상의 집’과 경북 경주 ‘윤경렬 옛집’을 법인이 매입했고, 부산 동구 ‘정란각’, 서울 중구 ‘중명전’ 등은 위탁받았다.

이는 1895년 출범해 회원이 380만 명인 ‘내셔널 트러스트’를 통해 영국의 성채 400여 곳과 해안의 주요 경관지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사멸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을 매입하고 보존 관리하는 영국식이 모델이다.

문화유산 보존은 그만큼 신뢰가 필요하다. 출판 문화 박물관 불교 등을 넘나드는 그의 화려한 경력은 첫걸음을 내딛는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 확대에 밑거름이다. 그는 건축문화유산에 대해 ‘지역 생활사를 알려주는 공간 활용’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현지 인력의 운영 참여’ ‘지역 경제 활성화 기여’란 운영 원칙에 충실하다. 그는 문화유산보존에서 청소년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지난 5년간 가입한 회원들은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이제부터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뿌리를 튼튼하게 할 청소년과 개인 회원 배증에 주력할 것이다.”

새로운 문화운동의 산실을 생성해온 그의 전력이 그 말을 뒷받침한다. 1970년대 학생과 기성인들 필수품이었던 삼성출판사 <세계사상전집>을 그가 만들었다. 그는 수익금으로 30년간 고서적을 모아 1990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삼성출판사 사옥에 국내 첫 출판인쇄박물관을 열었다. 여기에는 민(民)학회를 만들어 민화를 모은 이력도 포함됐다.

새벽5시 불교방송 청취 하루 시작

불교는 타종교 비해 소극적 아닌

느림 가치와 내면 향한 힘 있어

“사회 기여는 좋은 자료를 수집하고 후대에 되돌려주는 것이다.”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제일의 인쇄문화 전통에도 불구하고 출판박물관이 없어 박물관을 세웠다. “사재를 털어 시작한 수집가는 박물관을 세운 뒤 운영 난제로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유물은 사회가 함께 소유하는 공동 재산이다. 유물에 대한 공유 정신을 더 키우려는 사명감과 후대에 전달하려는 소명의식이 그래서 필요하다.”

이런 그의 가치관은 불교와 맞물려 있다. 그가 건립한 삼성출판박물관은 국보 265호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제13, 보물 758호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 국보.보물급 고서만 11권이 있다. 여기에 근.현대 도서류 16만여 점, 출판 인쇄도구 4만5000여 점, 고문서 1만여 점, 문방구 2만1000여 점, 서화 9000여 점 등 출판 관련 자료 40여 만 점이 빼곡하다. 그가 직접 고서점을 다니며 수집도 했다.

“박물관을 한다니까 주위에서 좋은 자료를 가진 사람이 소개해 주기도 했다. 소설가 이범선의 유족은 최근 작가의 유품을 박물관에 넘겨줬다.” 그만큼 출판에서 쌓은 신뢰가 박물관 건립의 밑거름이 됐다. 삼성출판사 당시 김동리 전집, 황순원 전집, 박경리의 토지 1부를 펴내며 대형 작가들의 산실로 일하며 쌓은 ‘신뢰자산’의 사회환원이다.

이번 문화신탁운동도 그간 그가 보여준 문화계 지원과 맞물리고 있다.불교계 박물관도 출판과 문화 등과 연결돼야 할 때라는 입장을 보인다. 사찰이 도서의 원초적 생성지로서의 전통 가치를 부각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찰에 도서관을 만들어 방문객이 열람.대출.반납시스템을 전국 단위로 자유롭게 이용하는 방안도 구상중이다.

그와 만난 증명전(사적 124호)도 대한제국 황실도서관이었다. 인터뷰서 마주 앉았던 2층은 고종황제가 책을 보던 방이었다. 여전히 도서관의 품격이 그대로인 증명전을 중심으로 정동의 근대유산 60여곳 중 8곳이 집중돼있다.

구러시아공사관(사적 253호)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사적 256호) 배재학당(사적 16호) 구세군중앙회관(서울시기념물 20호) 덕수궁 선원전 터(사적 124호)을 연결시켜 추억의 정동 옛길을 역사탐방의 코스로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신년초에 문화시설 관계자들과의 신년 하례회에서 ‘다같이 돌자 한 바퀴’ 프로그램을 제안해 이제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운영하는 ‘정동길 근대유산 도보 탐방’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

그는 21일에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박물관인의 날 행사에서 제15회 ‘자랑스런 박물관인 상(원로부분)’을 수상했다. “상을 주던 입장에서 이제 상을 받게 됐다.” 박물관협회장으로 후배들에게 상을 수여해 온 그가 문화운동을 하면서 수상자가 된 것이다.

서울 구기터널 어귀의 삼성출판박물관 6층 세미나실에는 매주 수요일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 강좌인 삼성뮤지엄아카데미가 ‘김종규 살롱’으로 불리며 각계 명사가 강사로 등장해 인기가 높다.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 등 직함만 20여 개. 박물관 미술 출판 종교 연극 행사에 빠지지 않는 그의 꽉 찬 일과는 아침 5시반 불교방송으로 듣는 불교경전이 시작이다. 그는 지난 2011년 10월15일 문화의 날을 기념하는 문화마당에서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김종규 이사장은…

동국대 경제학과 졸업, (주)삼성출판사 부산지사장과 부사장을 거쳐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고 현재 삼성출판박물관장이다.

한국민중박물관협회 이사와 부회장, (사)한국차인연합회 부회장, 한국메세나협의회 이사 등을 거쳐 현재 한국박물관협회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 위원이며 2009년부터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 현재 한국문학관협회 이사, 불교포럼 공동대표, 광화문문화포럼 회장등으로 활동폭이 넓다. 수훈으로 국민훈장 모란장과 은관문화훈장이 있고, 명원차문화 대상, 일맥문화대상 문화예술상, 고운문화상 고운문화예술인상 등을 수상했다.

[불교신문 2827호/ 6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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