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불교인재원 성철스님 수행도량 순례 현장
# 오전 7시 출발
오전 6시 일어나 부랴부랴 출장 준비를 하고 약속된 장소로 가니 버스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오늘 순례에 동참하는 사람은 총 350여명. 서울서 6대의 버스가 출발했고, 인천ㆍ수원지역 1대, 대구와 부산에서 각 1대가 출발했다. 버스에 오르니 개량한복 조끼와 가방을 건네준다. 저마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가방에 옮겨 담았다.
차 안은 마치 소풍을 가는 느낌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불자라는 이유로 금세 어색함은 사라진 듯 했다. 옆자리 도반과 인사를 나누고, 성철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서서히 고속도로로 올라섰다.
# 겁외사 가는 길
성지순례는 차 안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자가 동승한 차량은 서초서 출발한 버스. 78세의 최말호 보살부터 45세 김민여 보살까지 40여 명이 함께 했다. 가장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김민여 씨가 총무를 맡기로 했다. 부부가 함께 온 팀도 3팀이 됐다.
또 자매가 함께 온 팀도 있었다. 본인은 가톨릭 신자라는 정명실 씨는 “성철스님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성인이다. 그런 분의 숨결을 따라가는 것이 의미있어 동참했다”고 참가소감을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각자의 인사가 끝나고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이 녹음된 CD를 틀었다. 성철스님 특유의 빠른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법문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말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더니, 조금 지나자 법문이 귀에 익는다. “참선 수행만 하신 분인줄 알았는데, 법문도 아주 잘하시네.”
휴게소에 잠시 들러 버스는 산청 겁외사에 도착했다. 경찰이 먼저 와 교통정리를 하면서 인사도 함께 건넨다. “어서오십시오. 산청 겁외사입니다.”
# 오전 10시 봄나들이
법회까지 1시간의 여유시간이 주어졌다. 그 사이 속속 다른 버스들이 도착했다. 먼저 온 팀은 대웅전을 참배하고, 팀을 이뤄 108배를 하며, 생가터를 관람했다. 샛 노란 개나리와 붉은 목련이 길가에 가득 피었다. “따뜻하니 날씨가 참 좋네요.” 새벽에 나오느냐 두꺼운 잠바를 입은 사람들은 잠바를 가방에 넣고,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겁외사 입구에는 산나물을 뜯어 놓고 파는 행상이 차려졌다.
행사장에는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있는 법. 승적도 불분명한 객승 두 명이 겁외사 앞에서 독경 CD를 신도들에게 주며 보시금을 요구해 결국 겁외사 주지스님이 나서고서야 자리를 떴다.
# 오전 11시 고불식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실시되는 순례법회 고불식.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을 비롯해 20여 명의 스님과 사부대중이 성철스님 동상 앞 무대에 모였다.
“이번 순례를 통해 큰 스님의 수행정신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원택스님) “성철스님이 설파한 중도의 가르침은 불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순례를 통해 그 가르침을 다시 되돌아보길 기대합니다.”(손안식 중앙신도회 수석부회장)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섬기라는 성철스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재확인 할 수 있습니다.”(엄상호 이사장)
이날 행사에서는 또 의미있는 보시행도 이어졌다. 동참기금의 일부를 겁외사 측의 뜻에 따라 인근 군부대에 보시한 것. 이날 31사단 군법당에 200만원을 전달했다. 엄상호 이사장은 “불자들은 복을 지어야 한다. 동참금 중 한 명당 5000원은 사찰에 보시하고, 5000원은 백일장 기금을 조성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 12시30분 점심공양
순례법회 일정 가운데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점심공양시간. 10여 명씩 사찰 곳곳에 둘러앉아 저마다 가져온 반찬을 꺼냈다.
한명이 4~5개의 반찬을 꺼내 놓다보니 진수성찬을 이뤘다. 누군가 재밌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는지, 웃음소리가 곳곳서 울린다. 같이 부처님 법을 배우는 도반은 그래서 참 좋은 것 같다.
# 1시30분 원택스님 법문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성철스님을 직접 시봉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의 법문시간이었다.
“성철스님이 출가를 하자 아버지가 난리가 났죠. 유학자 집안 장자가 당시말로 ‘중’이 됐으니 집안 망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그래요. 그래서 이 집터가 안좋다며 헐어버리고 저쪽 강가에 집을 지었다 해요. 그리고는 부친이 석가모니부처님께 복수를 한다며 20년간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었다 합니다. 결국 6ㆍ25전쟁으로 인해 성철스님이 인근 대원사에 오자 부친이 그래도 아들인지라 찾아가 만나고서야 마음을 풀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항상 면양말을 신으셨어요. 나일론 제품이 비싼 시절만 생각하고, 나일론 양말은 절대 안 신으셨어요. 실은 면양말이 더 비싼데 말이죠. 그게 헤지면 꿰매 신는데 그렇게 말려도 안들으셔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양말과 의복을 꿰매 신는 것은 내 복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성철스님의 은사이신 동산스님도 큰 시주자가 오면 직접 상을 들고 공양을 대접했다고 그래요. 성철스님이 ‘왜 출가자가 시주자 밥상을 들고다니냐’고 하자 동산스님은 ‘이렇게 해서 절 살림을 꾸리는 것은 내 복이다. 너는 네 복대로 수행해라’고 했다 그래요. 그렇게 검소하게 평생을 살았던 분입니다.”
법문이 끝나고 스님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뤘다.
# 3시 회향
법문과 관람이 모두 끝나고 3시가 되자 모두 차량에 올랐다. 차는 다시 서울을 향해 달렸다. 새벽길을 나선 피곤함 때문일까.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2시간여 달려 휴게소에 들러서야 잠에서 깼다. 다들 좋은 꿈을 꾼 듯, 밝은 표정이다. 서울까지는 한시간 남짓의 시간이 남았다.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CD를 들으면서, 남은 시간을 마무리했다.
“다음 순례는 4월28일에 갑니다. 성철스님이 출가한 산청 대원사입니다. 그때 꼭 다시 만납시다.”헤어지기 아쉬운 듯 서로서로 악수를 나누며, 한참동안 인사가 이어졌다.정확히 12시간 동안의 만남. 그 사이 새로운 도반을 만나고, 성철스님이 생전 육성이 담긴 법문을 들으면서 마음공부를 하고, 또 복 짓는 일을 하면서 하루 순례는 마무리 됐다.
[불교신문 2807호/ 4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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