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법난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연재 (9)
특별상(심사위원장상) 준제스님

조계종은 지난해 연말 1980년 국가권력이 저지른 초유의 불교탄압사건인 10.27법난의 진실을 알리자는 목적으로 독후감 공모전을 개최한 바 있다. 종단은 10.27법난 당시 스님이었던 9853명에 대한 피해자 일괄신청과 동시에 현행법 개정을 요구하며 종단 차원의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을 추진하고 있다. 10.27법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확산시키자는 취지로 총 11편의 수상작을 싣는다.

먼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이런 천인공노(天人共怒)할 10.27법난의 피해자 모두에게 삼가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가해자 피해자 모두의 입장을 떠나서 이 모두는 우리의 시대적 아픔이었으며 부득이한 인연의 소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형국입니다. 일련의 일을 지휘 감독한 최고 권위자는 전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절 집안에 들어와 헌향하고 기도하며 참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이 일인자는 정말 아무 일 없었던 양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법난 당시의 피해 스님이나 재가자들은 그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실정인데도 말입니다. 이 아픔의 기록은 영원히 되새겨져야 마땅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업 덩어리를 소멸할 길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떠나 진실된

자기참회와 반성을 바탕으로 한

눈물어린 사과와 용서뿐일 것

조심스럽게 살펴보건대 분명 거기엔 법난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준 인(因)이라는 것이 분명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대처승과 비구승과의 소송 싸움, 가톨릭이나 기독교처럼 불교라는 이름으로 대중 속으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점과 정교분리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출가의 상(相)을 망각(忘却)한 소수의 일단의 무리들과 또 그들(가톨릭과 기독교)과 다르게 국제적 네트워크(network)를 형성하지 못한 점은 분명 우리 모두의 과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를 빌미삼아 저 가엾은 중생들은 이 일련의 사건을 만들어내고 조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피해 스님들은 여전히 가슴의 멍울을 지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이런 최고 책임자의 사과 없이는 그 다음 단계인 정신적, 물질적 피해 보상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이런 불합리하고도 비상식적인 일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다만 군복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었을 뿐 또 몽둥이 대신 펜을 들었으며 총칼 대신 돈뭉치로 위협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습만 달리했지 그 시대양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 오히려 내부적으로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항상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의 비웃음의 의미를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우리 앞에 다가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들이 조그마한 틈새라도 보인다면 말입니다. ‘승냥이’ 마냥 이들은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노려보고 있습니다. 만약 빈틈이 드러난다면 저들은 또 다시 저 옛 기억의 ‘푸른제복’을 들추어내려고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힘이 있다면 그 힘이 ‘해인삼매’를 꿰뚫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면 아무리 험난하고 위험한 밀림을 지나가더라도 우리는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부처님 법으로 뭉쳐진 모두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누가 침범할 수 있을까요?

이제 이 슬픈 현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갑니다. 마치 한강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것처럼 사라져 가지만 분명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살아 남아 있습니다.

그 업(業) 덩어리는 쉬 사라지지 않고 개인의 마음 속에 집단의 고리 속에 더덕더덕 붙어 지워지지 않고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이 업 덩어리를 소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피해자와 가해자를 떠난 진실된 자기참회와 반성, 그래서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 눈물어린 사과와 용서 뿐일 것입니다.

진정 이렇게 되었을 때만이 부처님은 염화미소(拈華微笑)로써 답해 주실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불교신문 2797호/ 3월7일자]

준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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