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 신년사

옛사람이 이르기를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因地而倒者因地而起)’고 했습니다. 이는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공허하다는 가르침이니 중생(衆生)은 번뇌(煩惱)에서 본성(本性)을 찾고, 윤회(輪回)에서 열반(涅槃)을 구하는 것이니 이치에 맞다 할 것입니다.

세상은 급하게 변하고 또 변하여 한편으로는 풍요하나 한편으로는 빈곤합니다. 물질은 넘치나 정신이 궁핍하고, 말은 많으나 실천이 따르지 못합니다.

유리조각이 비록 투명하기는 하나 그 날카로움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듯 백가(百家)가 쟁명(爭鳴)하여 화합할 줄 모릅니다. 상하(上下)의 분별이 없어지고 도의(道義)가 무너져 내리니 날마다 듣는 말이 전대미문(前代未聞)입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바라보고 걸어야 하듯 출신활로(出身活路)를 얻으려면 현성(賢聖)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고불고조(古佛古祖)는 이 길을 바로 걸어 혜명(慧命)을 이었고, 삼독중생(三毒衆生)은 집착을 놓지 못해 삼도고륜(三途苦輪)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하니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누구나 반드시 일의정법(一義正法)에 귀명(歸命)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省察)에 따라 우리 종단(宗團)은 지난해에 ‘자성(自省)과 쇄신(刷新)을 위한 5대 결사(結社)’를 천명한 바 있습니다. 불교적 가르침을 바로세우기 위한 수행결사, 민족문화를 바로세우고 스스로 보존해 나가는 문화결사, 생명공존의 가치를 실현하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생명결사, 사찰이 이웃과 함께 나누는 터전이 되도록 하는 나눔결사, 종교간 평화와 남과 북,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결사가 그것입니다.

5대 결사는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직시(直視)하고 자기쇄신을 통해 막힌 것을 뚫고 굽은 것을 광정(匡正)하여 세상을 정토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는 저 고려시대의 정혜결사(定慧結社) 백련결사(白蓮結社)를 비롯해 근세의 봉암사결사(鳳巖寺結社)의 전통을 종단적(宗團的)으로 계승하기 위한 다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력이 부족하여 아직은 그 성과가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더 새로운 다짐과 정진과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경(經)에 이르기를 ‘모든 것은 오직 마음먹기에 있다(一切唯心造)’고 했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고 나쁜 생각을 하면 불행해집니다. 마음이 생각을 내고 생각이 행동을 하게하며 그 행동에 따라 복(福)이 오기도 하고 화(禍)가 닥치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새해에는 북한의 지도자 급서(急逝)와 세계경제(世界經濟)의 불안 등으로 국내외 상황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는 형국(形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불자와 국민이 자성(自省)과 쇄신(刷新)을 통해 심지(心地)를 굳건히 하고, 법륜상전(法輪常轉)과 정불국상(淨佛國土)를 위해 정진하려는 서원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새해는 눈송이가 거목을 꺾고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다시 일어서듯이 더 높이 더 멀리 더 아름답게 비상(飛翔)하는 한해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불교신문 2781호/ 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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