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금강산 건봉사

철책문을 자물쇠로 열고, 붉은 지뢰표시의 철조망과 나란히 뻗은 ‘해탈의 길’을 오르는 스님의 뒷모습은 거침이 없다.

경칩부터였을까. 축축한 봄의 기운을 대지는 나무를 통해 한 달 사이에 일거에 토해냈다. 강원도 인제와 고성을 잇는 고갯길 중 유일하게 터널이 뚫리지 않은 해발 500m의 진부령 굽잇길. 창밖으로 뭉게뭉게 솜털처럼 피어오른 신록은 강인한 생명의 상록수만으로 버틴 겨울산의 여백을 여린 연두색 붓으로 촘촘히 찍어 메운듯 하다.

금강산 건봉사에 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에서 강원도 간성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일렁이는 연등물결을 바삐 쫓아다니던 축제의 시간을 마치니, 시간은 어느덧 5월의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강원도 고성에 위치하지만 ‘금강산 건봉사’라는 편액을 당당히 붙일 수 있는 건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기 전까지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 등을 거느렸던 본사로 북한의 유점사와 함께 금강산 일대의 대찰이었기 때문.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능파교(보물 제1336호)는 남쪽의 극락전, 팔상전(6.25전쟁 때 소실) 지역과 북쪽의 대웅전, 염불전을 연결해주는 다리로 건봉사의 사격을 가름케 해준다.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뒤편의 작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등공대로 오르는 ‘해탈의 길’로 향하기 위해 종무소에 들렀다. 해탈의 길에 온전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쇠 꾸러미가 필요하다.

등공대가 민통선 지역에 있어 철문을 두 번 지나야 한다. 성하스님의 안내로 길을 따라 나섰다. 가는 이슬비가 내린다. 5월의 여린 잎은 더욱 투명해진다. 자물쇠로 닫힌 문을 연다. 어느덧 길 양옆으로 철조망이 나타난다. 지뢰표시도 눈에 띈다. 때마침 군부대의 포사격이 시작됐다. 한 달에 2~3번 정도 들린다고 한다. 털고무신 신은 스님이 공양 후 포행하기 적당한 대웅전에서 2km남짓의 공간은 민족분단의 현실 앞에 특별한 공간이 되어 있다.

살아있는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 몸은 벗어버리고 마음만 연화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등공(騰空)이라 한다. 신라 경덕왕 때 발진화상이 정신, 양순스님 등과 1만 일 동안 염불을 외는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효시이다. 1만 일은 27년이 넘는 시간으로 평생을 바치는 원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1820인이 동참했는데 그중 120인은 의복을, 1700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스님을 봉양했다.

이 염불만일회의 수행을 마친 31분의 스님은 1만일이 되던 날 등공했고, 그 자리가 지금의 등공대이다. 그 뒤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도 차례로 극락왕생했다고 한다. 등공대에 오르는 길은 20분 남짓 걸린다. 길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북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더 이상 인위적인 장벽은 보이지 않았다.

건봉사에서는 오전과 오후 각 1회씩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등공대로 향하는 해탈의 길을 개방한다. 사전에 종무소에 연락하고 가는 것이 좋다.

오는 28일에는 제1차 산사음악회와 함께하는 ‘금강산 건봉사 등공대 해탈의 길’ 걷기행사가 열린다.

[불교신문 2720호/ 5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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