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희사 무량한 마음을 지니고, 이웃과 함께하라”

모든 생명 사랑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며
기쁜 일은 반겨주고
차별하지 말아라

봄의 계절 5월을 시샘하듯, 한반도를 뒤흔든 소낙비가 그치고 나자 산색(山色)은 한층 푸르름을 더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 3일 충북 청주의 천년고찰 보살사로 향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종산 대종사에게 불자들에게 전할 법문을 듣기 위해서다. 거리마다 곱게 걸린 오색의 연등이 부드러운 봄바람에 흔들리며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고 있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

“5월10일은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을 벗어나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항상 네가지 한량없고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불교에서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합니다. 불자들은 이 네가지 무량한 마음을 지니고 생활해야 합니다.”

원로의장 종산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자들이 사무량심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비희사. 모든 생명을 끝없이 사랑하고(慈), 남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알며(悲),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고(喜), 모든 이를 차별없이 대하는 마음(捨)을 가지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갖는 것이 곧 부처되는 길이라며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는 한자 한자의 뜻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라”고 말했다. 스님의 법문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사무량심의) 첫째는 자 무량심(慈無量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아무 조건없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어버이와 같은 사랑을 베푼다면 원수가 생길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에게 무한한 자비심을 베풀었듯, 우리도 모든 사람과 생명을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는 비 무량심(悲無量心)입니다. 남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세계일화 만생일가((世界一花 萬生一家)라 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고, 만물은 나와 한 몸입니다. 만물 중생이 다 한 몸이요, 풀 한포기, 돌 하나에 이르는 삼라만생이 다 인연의 고리로 이어져 있는 이치를 생각한다면 어찌 이웃의 슬픔이 내 일이 아닐수 있겠습니까. 이런 생각으로 서로를 위로하면 슬픔의 크기는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셋째는 희 무량심(喜無量心)입니다. 이웃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주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생긴 일을 내 일같이 기뻐하면 미움과 시기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 미움과 시기가 없으면 남도 나의 기쁜 일을 같이 기뻐해 줍니다. 서로가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면 행복한 세상이 됩니다.

넷째는 사 무량심(捨無量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세간사의 갈등은 나와 남을 나누고,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시비하는데서 생깁니다. 내 마음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부처요, 도반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거지 여인과 똥을 치는 일꾼도, 남의 생명을 해치던 사악한 무리들도 모두 자비로 이끌고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세간사의 갈등과 시비하는 마음을 버리면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외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하고, 나누기보다는 독점하고, 기뻐하기보다는 시기하고, 화합하기보다는 갈등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대립하고, 여야가 갈등하고, 종교간 반목하고, 다른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것은 사무량심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언제까지도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세우자면, 우리 불자들이 먼저 이웃에게 자비희사의 무량한 마음을 보여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부처님처럼 먼저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은 어둠에서 광명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증오에서 화해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지옥에서 극락으로, 중생에서 부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은 우리가 이렇게 살기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 즐거운 날, 기쁜 날입니다. 우리 모두 두 손 모으고 부처님 오신 뜻을 되새기는 공양을 올립시다.”

이어 원로의장 종산스님은 서원을 담은 게송을 읊어주며 부처님오심을 찬탄했다.

자성과 쇄신결사와 관련해서도 원로의장 스님의 간곡한 당부의 말이 이어졌다. “아울러 스님과 불자 모두가 항상 수행하며, 이웃을 위해 실천하고 회향하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나를 돌아보고 허물을 뉘우치며 수행의 정신을 잃지 않을 때 저절로 자성과 쇄신이 이뤄집니다. 그 모든 것의 바탕에 사무량심이 있다면 곧 우리 사회는 시비와 어둠이 사라지고 행복과 광명이 가득한 불국토가 될 것입니다.”

대종사께 인사를 드리고 산문을 나섰다. 무량심이란 어떤 마음일까. 일반인의 잣대로 크기를 잴 수 없는 무한한 마음이 무량심이다. 가끔 언론매체를 통해 “어떻게 저렇게 헌신적일수 있을까”라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사람들의 모습보다 더 큰 마음일 것이다. 생각으로 지어내는 행동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동일 것이다. 또한 노구로 인해 불편한 몸이지만 매일 아침 예불을 올리고, 절 마당까지 나서서 배웅해 주는 대종사의 마음 역시 차별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무량심이 아닐까.

무량심이란 말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산문을 내려왔다. 햇살을 받은 나무의 새순들이 서로를 비춰가며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 게송

合掌以爲花(합장이위화) 身爲供養具(신위공양구)
誠心眞實相(성심진실상) 讚嘆香煙覆(찬탄향연복)

“두 손 모아 합장으로써 꽃을 만들고 
청정한 몸으로 공양구를 삼나이다.
성심을 다 받치는 진실한 모습으로
찬탄의 향기를 가득 채우겠나이다.”


■ 원로의장 종산대종사는…

마음의 병 고치는 의사의 길 서원

종산대종사는 일제시대인 1924년 태어나 의과대학 재학 중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고 발원하고 1948년 광주 자운사에서 도광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49년 고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한 스님은 이후 43년간 전국의 선원을 돌면서 수행에만 전념했다. 1954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으며, 근현대 한국불교 최고의 선지식인 용봉, 전강, 동산, 경봉, 금봉, 청담스님 등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스님의 ‘대못 수행’은 수행자로서 치열한 구도행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스님은 출가 후 범어사에서 3명의 도반들과 함께 잠을 자지 않고, 눕지도 않으면서 용맹정진을 했다. 널빤지에 못을 박아 앞에 세웠다. 잠시라도 졸면 이마에 못이 찔리는 것은 명약관화. 그렇게 20여 일이 지나 문득 도반의 이마를 봤다. 피가 나고 긁히고, 심지어 피가 얼굴 군데군데 엉겨 붙어 있었다.

‘대못 정진’ 발심해 무문관 6년 수행
수행자의 표상 재가불자의 스승

스님의 모습도 그 도반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터였지만, 스님은 도반이 치열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고, 나보다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마음이 일었다. 이후 몇 번에 걸쳐 용맹정진을 하고,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간 수행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고 문 없는 방의 벽을 걷어차고 세상으로 나왔다.

이후 종산대종사는 개심사 주지와 1988년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의장, 법제의장을 역임했으며 1990년 직지선원 조실로 주석하고, 1997년 원로의원으로 추대됐다. 2004년 조계종 최고의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장으로 추대됐으며, 현재까지 불자들의 정신적 귀의처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유폐될 당시 종산대종사를 찾아 정신적 위로를 받아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불교신문2718호/2011년5월7일자]

청주=안직수 기자 | 사진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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