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창간 50주년 특별좌담


불교신문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국불교 과거 50년 미래 50년’을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1994년 종단 개혁을 이끌고 실상사에서 생명 환경 운동을 펼치며 최근에는 종단 화쟁위원장을 맡아 불교와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데 앞장서는 도법스님, 1980년대부터 청년불자들을 중심으로 올바론 불교관을 교육하다 정토회를 만들어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한편 부처님 가르침으로 개인의 삶과 고민을 덜어주는 법륜스님, 승가 전통 교육을 마치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심리학을 전공해 생태심리학 분야를 연구하는 서광스님, 보현행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원력을 품고 1960년대 대학생 수도원에 입사했으며 이후 대학교수,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등을 거치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지식인들을 모으는 일에 매진하는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이 한 자리에 모여 불교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했다.



패 널

도법스님
(조계종화쟁위원장, 실상사 스님)

서광스님 (심리학 박사, 운문사스님)

법륜스님 (에코붓다 이사장, 정토회 지도법사)

박 세 일 (화쟁위원,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일시 : 2010년 10월21일 오후 4시

장소 : 불교신문 사장실

 

 불교신문은 지난 10월21일 본지 사장실에서 ‘한국불교, 지나간 50년 새로운 50년’을 주제로 특별좌담을 열었다.

 

 

창간 50주년 특별좌담 / 한국불교…지나간 50年 새로운 50年’



“산업-민주화 경험 미숙-농촌 기반…사회 리더십 상실”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정화에 골몰…역경.포교 뒷전

 구세대비 원력 잃어 안타까워”

 

도법스님 : 과거를 이야기하면 정화를 들 수 있다. ‘정화’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일제 잔재 청산, 독신 비구 중심 등이다. 정화를 일제가 아닌 조선조 500년 불교 역사와 연결시켜보면 극복해야할 점은 없을까, 계승할 점만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정화운동이 의미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한계 역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화 이후 도제양성 포교 역경을 주요한 목적사업으로 천명했었는데 과연 이 목적 사업에 충실했는가. 이 두 가지를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법륜스님 : 일제 잔재 속에 조선조 500년 잔재가 있다. 조선조 500년 간 불교가 탄압 받으면서 첫째 사회의 리더십을 상실했다. 둘째 스님들은 산속에서 불교의 전통을 지켰는지 몰라도, 신자들은 불법을 알지 못한 채 불교신앙만 유지했다. 그 이유는 글을 아는 양반들은 불교를 배척했고 신자들의 대부분인 여성들과 평민들은 글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의 진리가 없는 불교신앙만 계승된 것이 큰 멍에였다. 여성들이 불교를 지켜준 대신 담마(佛法)가 없는 불교를 전해준 것이다. 불교는 해방 후 혼란기에 자기 문제에 매몰돼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대처승이란 이유로 불교계 엘리트를 배척, 인력 손실을 가져온 점, 내부 문제에 에너지를 쏟음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한 점은 아쉽다. 정화를 평가할 때 조계종 틀에서 볼 때 긍정적 면과 한국사회 안에서 부정적 면을 동시에 봐야 한다.

 


서광스님 심리학 박사



“타종교 비해 방대한 물적 유산

 리더십 상실 원인…포교 무관심”

 


서광스님 : 불교가 사회의 리더십을 상실한데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다. 불교는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부잣집 자손처럼 재산을 상당히 물려받았다. 하지만 기독교는 들어온지 100년 밖에 되지 않아 재산이 없었다. 내려오는 재산을 정화 이후 우리가 한꺼번에 갖게 됐다. 그래서 관심이 사회적 책임이나 포교 등으로 가지 않고 주어진 것을 얼마나 차지 하는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기독교 가톨릭은 열심히 일해서 이제는 더 많이 축적했는데 우리는 어느 새 다른 종교에 비해 경쟁력이 약화됐다.



법륜스님 정토회 지도법사



“조선왕조 500년 불교탄압 잔재

사회 리더십 상실…신앙만 유지”

 

법륜스님 : 지난 50년 동안 불교가 우리 사회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1차 책임은 이유불문하고 우리에게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한국불교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시대가 아니었나 한다. 지난 50년간의 우리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불교는 지난 1600년간의 역사속에서 민주화 산업화에 관한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 기반도 전통적인 문화가 강한 농촌이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흘러온 노동자와 젊은이들이 자리한 곳은 도시인데 기독교인들은 도시에 재빠르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불교는 농촌에 기반을 둬 도시에 대한 경험이 없어 도시화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또 불교는 사상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이 있지만 역사적인 산 경험이 없어 민주화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지난 50년간 우리 사회가 미국화 서구화 되가는 과정에 불교가 대응을 못한 것은 이러한 점 때문에 불가피 했다고 본다. 이제 서구사회도 한계가 왔다. 미래 사회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은 우리나 기독교나 마찬가지다. 이제 공정한 상태에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과학의 발달이나 환경 등의 문제는 불교에 불리하지 않다. 미래는 오히려 긍정적이다. 그래서 과거의 평가를 너무 우리 안에서만 찾다 보면 미래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고 본다.

박세일 위원 : 지난 50년간 불교는 두 가지 순기능을 했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산업화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해결했는데 산업화 민주화는 서구적 측면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교는 한국 전통을 계승, 발전시켰다. 두 번째는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 갈등 불안이 많이 생겼는데 한국불교는 물질과 정신의 조화와 균형에 기여했다. 역기능도 두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첫째는 불교가 현실 참여 과정에서 보인 세속화다. 현실 참여는 보살의 행원에서 비롯된다. 불교의 본래 정신을 통해 다른 사회 단체와는 차별되는 개혁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차별이 없어졌다. 현실 참여 과정에서 세속에 포섭되었다고 할까. 가령 종교단체의 투표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도법스님 : 한국불교 순수, 전통, 정체성을 회복한다고 정화를 통해 독신 비구승의 조계종단을 만들어냈는데 독신 비구승 종단 만드는데 너무 골몰하다 보니 정화를 통해 애초 이루고자 했던 역경 포교 도제양성 등이 뜻한 만큼 되지 못했다. 원래는 과거를 정리해서 미래를 밝게 하자는 취지였는데 잘 안 된 것이다. 조선조 500년 불교가 입은 피해 중 구세대비 정신과 원력의 정신이 사라진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화 자체는 큰 의미를 지닌다.

도법스님 : 정화 이후 불교를 이야기 해보자. 일제 불교를 정치권력 예속화, 세속화된 불교라고 한다면 정화를 통해 이를 주체적 자립적인 불교 본연의 모습으로 바꾸어야 했는데 과연 제대로 진행돼왔는지도 평가해볼 문제다.

서광스님 : 비록 불교가 세속화 권력화한 역기능은 있지만 희망적인 대안도 있다. 바로 여기에 계신 세 분이 하시는 일이 저는 불교의 순기능이며 미래 희망이라고 본다. 저는 개인 혹은 집단 상담으로 치유를 하는데 굉장히 미미하고 많은 한계를 지닌다. 가령 글로벌화된 지구촌에서 사회가 산업화 권력화 돼 개인 소외가 심각한데 단순히 한 두명의 상담으로 근본적인 치유는 불가능하다. 그런 고민을 하다 도법스님의 대안학교 귀농, 생명평화와 같은 운동을 보면서 미래 생태치료나 환경분야를 통한 심리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는 부처님께서 처음 고집멸도(苦集滅道)를 통해 치료하는 방식을 복원한 것 아닌가 여겼다. 부처님께서 대중을 치료하고 상담할 때도 한 두명이 아닌 거대 대중을 대상으로 답을 제시하고 감화를 통해 치유했다. 박 이사장님이 주창하는 신국민운동도 신불교운동으로 이름만 바꾼다면 불교운동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앞으로 불교가 지향해야할 가치라고 본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산업화 속 전통문화 계승.발전

 물질-정신 조화에 불교 역할 커”

 

박 위원 : 불교의 현실 참여 방식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이익적 권력 지향적 참여와 가치 지향적 생명 지향적 참여다. 현실참여 사업을 하기 전에 한국불교가 몇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불교 정체성의 문제다. 한국불교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천착하는데서 앞으로 지향점이 나온다. 두 가지 차원을 생각해야 한다. 다른 종교와 다른 존재 가치, 그리고 중국.일본불교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천착하는 방법 역시 두 가지다. 수행법과 구세법(救世法)이 달라져야 한다. 한국불교가 중국 대승의 아류가 되어서는 안된다. 중국 일본과 다른 상구보리법, 하화중생법, 기독교 가톨릭과 다른 수행법이 있어야 한다.

도법스님 :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관해 생각해볼 점이 있다. 현재 한국불교의 불교관 수행관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문제를 이원적으로 본다는데 있다. 수행 따로 삶 따로, 내 수행 따로 사회문제 따로, ‘자리’ 따로 ‘이타’ 따로, 상구보리 따로 하화중생 따로다. 이처럼 이원화된 불교관 수행관을 통일된 불교관 수행관으로 만들어야한다. 그래서 이타가 자리가 되고, 나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사회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기도 하는 통합된 불교관 교화관을 확립하는 것이 한국불교 정체성을 확립하는 핵심이라고 본다. 이원화된 불교를 통일된 불교관 수행관으로 정립 안하면 일이 방향을 잃게 되고 힘을 갖지 못한다. 이게 정리 안되면 다른 문제 정리 안된다.



창간 50주년 특별좌담 / ‘한국불교…지나간 50年 새로운 50年’



“생명 파괴 환경 훼손…연기관 바탕 실천적 답 제시해야”

 



현실수행의 문제점

상구보리.하화중생법 체계화

봉사.전법 깨달음과 일맥상통

수행 전제된 현실 참여 ‘절실’

 



현대사회 속 불교

생태.심리치료 현대인 위안

승가교육에도 인문교육 강화

과학.환경 대안…불교 역할

 



미래사회 불교 지향

사회 리더십 확보 중대과제

종교갈등 남북문제 해결 나서

통합 방식으로 ‘불교’ 알려야



법륜스님 : 신해(信解)가 겸비 돼야 한다. 노보살이나 이런 분들은 믿음은 견고하다. 그런데 믿음만 있지 담마(佛法)에 대한 이해가 없다. 담마가 없다보니 어떤 상황에 처하면 믿음의 명의나 대상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상황이 바뀌면 기독교나 다른 종교로 바뀌는 것이다. 반면 청년들은 불교 이해는 있는데 믿음으로 박히지 않고 힘이 없다. 그러니 자기문제도 해결 못하고 사회적 실천도 나오지 않는다. 왜 교리를 배우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는데 교리를 배우면 믿음이 안 생기는가. 이유는 우리 교리에 문제가 있어서다. 교리를 공부하면 대승은 근본교설을 부정(否定)하고 선(禪)은 또 대승을 부정한다. 부정의 원래 의미는 부정과 부정을 통해 중도를 자각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것이 경험적으로 통합 안되고 지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믿음이 생길 수가 없게 돼있다.

대승이 소승을 부정한 것은 근본교설의 본래 의미를 복구하기 위함이다. 선이 대승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관념화된 대승의 부정(不正)적 요인을 부정(否定)함으로써 대승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해서 소승 대승 선이 일목상통해야 중도적으로 정립되는데 사상적으로 통합한 경험을 기초로 지도가 안되기 때문에 교리를 배우면 배울 수록 신앙심이 얕아진다. 이게 통합된 것이 원효의 통불교다.

그리고 불교가 자기 정체성을 갖고 기여해야 할 바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첫 번째는 경제적 발달에도 불구하고 커져가는 정신적 고뇌를 치유하는 일이다. 이에관한 노하우, 역사적 실천적 경험이 불교가 가장 많다. 두 번째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명 갈등 대립 정복 생명 환경 파괴에 대해 서양 철학이 답을 못 찾고 있는데 불교의 연기관 철학이 실천적 이론적 답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사상적으로 본래 자기 모습을 회복해야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한국불교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여러 시대적 과제 중 통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산업화 민주화에서는 경험이 없지만 민족의 문제에서는 독립운동 등 역사적으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통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 통일된 사회에서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 두 번째는 개발과 환경 문제에서 실천 모범을 만들어갈 때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 한국만의 독특한 역사를 살려내는 역할을 하면 50년 안에 가장 중심적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박 위원 : 21세기 대한민국 불교의 사명은 사회화와 세계화다. 세계화는 한국불교의 장점인 통불교화해서 나아가야한다. 사회화는 다른 종교가 못 갖는 메시지를 던져야한다. 환경 등 사회이슈를 다루더라도 불교는 다른 환경단체와 달라야한다. 자기 수행과 사회 구원이라는 불교의 독특성을 가져야 한다.

사회문제든 불교문제든 공급자 입장을 벗어나 수요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메시지 전달 방법도 달라진다. 그러자면 불교도 사회과학을 들여와 바깥 공부를 해서 중생들을 위해 무엇을 줄 것인가를 갖고 연구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서광스님 : 수행방법에서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상충적으로 보지 않고 보완적 문제로 보는 것이 필요하고 그 방법론을 찾아야한다. 실천의 측면에서 보면 공부하다가 이타(利他)로 갔다가 안되면 다시 자기 문제나 자리(自利)로 돌아간다. 중도적 통합적 보완적으로 일하면 늘 최선책 차선책이 있는데 상충적으로 보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 혹은 흑백논리에 빠지고 극단으로 흐른다. 만약 지도자가 그렇게 하면 따르는 사람들은 공허해지고 혼란에 빠지게된다. 그래서 극단보다는 차선책을 찾고 타협 균형을 생각하면 불교가 통합되고 더 커지게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교학이나 수행 모든 면에서 이처럼 보완 통합적 실천 방식으로 전환해야한다고 본다.

도법스님 : 부처님 가르침을 응병묘약(應病妙藥)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파악한 병은 무엇이고 치료약은 무엇인가를 짚어야 한다. 부처님이 쓰는 약은 담마, 즉 법이다. 부처님은 본래 법을 갖고 시대별로 처방을 달리했다. 초기 대승 선을 이어 이제 현대불교 처방이 나와야한다. 본래법을 놓치면 불교 정체성이 없어진다. 현대병에 맞는 처방을 쓰려면 본래 불교 이해와 더불어 현대병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본래불교는 물론 현대 사회에 대한 병도 취약하다. 한국불교 미래 이야기 하려면 이 두 가지에 천착해야 한다. 본래불교에 근거해서 현대사회의 병이 무엇인가 알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 현대병은 무엇인가. 물질 풍요, 기술 진보로 인해 나타난 자연생태적 문제와 사람 사이의 불신 소외 상대적 박탈감 공동체 해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에대해 대답을 던질 수 있어야 한국불교 미래 전망이 나온다고 본다.

서광스님 : 저는 두 분 스님이 이미 하고 있다고 본다. 물질을 추구하면서 정신적 피폐를 앓는 현대인들에게 법륜스님이 ‘즉문즉설’로 처방을 내리고 있다. 기술 자연의 발달로 인해 자연과 멀어지면서 오는 인간성 결핍, 고통 부조화로 인한 고통이 큰데 이는 자연 치유가 효과가 크다. 자연은 치유자의 역할이 없어도 훌륭하게 이를 해낸다. 도법스님의 자연환경 생태가 그 역할을 한다. 여기에 덧붙여 박 교수가 말씀하시는 정치 사회적 운동이 더해지면 완벽할 것이다.

법륜스님 : 수많은 사람들이 고뇌하는 바를 들어보면 만 가지 병의 근원은 결국 무지(無智)에서 나온다. 신도들과 문답을 하면서 문답을 통해 근본으로 가게 되고 그러다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한다. ‘알았다’고 할 때 경험적으로 자각하면 문답으로 끝나는데 대부분 약간의 이해를 동반해 ‘알았다’고 하기 때문에 현실에 부딪히면 과거의 습관에 의해 다시 어두워진다. 그러면 다시 2차적으로 사로잡혔음을 자각케 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 ‘참회’가 나오는데 참회는 죄지었다가 아니라 ‘이것이 법인데 어리석어 법대로 하지 못함을 자각하고 본래대로 돌아감’을 말한다.

그것이 수행이다. 즉 문답을 통해 단박에 깨치기도 하고 반복을 통해 본래 자리로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문제가 풀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기쁨’이다. 기뻐서 나타나는 현상이 두 가지다. 하나는 선물 보시 봉사 등 보답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식 남편에게 하도록 권유하는 행위다. 대개 전법을 자신과 먼 사람에게 하는데 자기가 경험해서 자기가 좋을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권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하면 봉사나 전법이 깨달음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각했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닫고 난 뒤 이를 전파할까 망설였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교리적으로 잘못됐다. 깨닫지 못한 자가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합쳐놓은 것이다. 불교의 자기구원과 사회성은 동시에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수행자가 자각은 됐는데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깨달음의 부족이다. 깨달음의 망상이다. 여기에다 사회구조적 이해에서 오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풀어가는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박 위원 : 고통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구조적인 점이 많아 개인의 고(苦)도 연기적으로 나타나 사회차원에서도 교정이 돼야한다. 스님들이 사회과학을 자세히 몰라도 되지만 이해는 해야한다. 사회를 크게 보는 사회과학적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善)인데도 방향이 잘못되게 제시될 수 있다. 승가교육에도 일정하게 사회교육이 들어가야 한다.

도법스님 : 우리가 갖는 불교관이 제대로 됐나 근본 의문을 갖는다. 부처님은 최고의 정신통일 세계 까지 가고 고행도 했지만 해답이 안나와 던졌다. 그런데 부처님은 아니라고 했는데 우리는 자꾸 집착한다. 부처님께서 대안으로 내놓은 안이 팔정도이다. 부처님은 행위가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고 했다. 바라문이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있어서 생겼다는 말이다. 즉 우리의 삶이 행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뜻이다.

깨달음도 행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불교는 뭐가 된 후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그대로 되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물건을 걸레로 쓰면 걸레가 되고 수건으로 쓰면 수건이 된다. 역동적 창조적으로 써야 할 물건은 모두에게 주어졌다. 어떻게 쓸 것인가는 우리가 할 바에 달려있다. 중생으로 쓰지 말고 부처로 쓰라, 이렇게 되면 불교가 대단히 역동적이 되고 그러면 스님들이 산속에 있어도 되고 주지해도 된다. 어디에 있든 중요하지 않게 된다.

서광스님 : 그 가치관은 현대적 대승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법스님 : 이제는 사회가 한 동네다. 불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것이 불교다. 불교 울타리 쳐놓고 거기에 머물면 이미 불교가 아니다. 한국불교가 미래에 어떻게 할 것인가 측면에서 보면 불교라는 이름도 울타리도 넘어서서 한반도 지구촌 우주를 상상하는 시대에 불교도들이 함께 꿈꾸는 깃발, 한반도가 함께 드는 깃발, 나아가 지구촌이 함께 하는 깃발을 내걸어야한다. 자연생태, 한반도 남북문제, 선진사회 이런 것을 모두 하나로 담아내는 과제를 정리해서 예를들면 나는 ‘한반도생명평화공동체’ 라는 용어로 정리했는데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끼리만 아니고 한국사회와 한반도 구성원들이 함께 꿈 꿀 수 있는 내용 갖고 고민할 때 우리 시대를 성큼 앞장서서 선도할 수 있다. 그리고 사부대중이 함께 나아가야한다.

박 위원 : 한국불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정해지면 불교의 인적 물적 문화자원을 모두 집중해야 한다. 종단.사찰 운영이 같은 방향으로 집중 관리돼야 한다. 물적 인적 자원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쓰도록 관리 감독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수도, 교화기능, 조직관리기능을 분업화 협업화 할 필요가 있다. 스님은 수도에 전력하고 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조직관리는 승가를 분업화 해서 나누든지 관리는 신도에게 맡기고 스님은 수도에 전력하든지 등으로 분업할 필요가 있다.

법륜스님 : 끝으로 불교가 아무리 과학적 사회적 요소를 갖고 역할을 한다 해도, 사회적으로 볼 때 불교의 가장 큰 역할은 종교영역이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적 고뇌를 덜어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그냥 바라문의 제사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게 불교가 가장 경쟁력이 있고 이를 확보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두 번째는 문명적 한계 사회에서 문명적 비전을 열어줘야 한다. 생태 환경문제의 답은 소비중독을 치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전체로 볼 때 불교든 종교는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약자 편 들어주어야한다, 약자에 대한 역할이 있어줘야 한다. 세 번째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 관리하는 답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남북문제를 푸는 경험을 갖춘다면 이는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역할이다. 평화문제는 우리 문제 해결이 세계문제 해결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는 우리 문제인 동시에 세계문제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해결에 전력할 필요가 있다.

정리=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 2670호/ 11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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